'절치부심' 정성룡의 부활, A팀 수문장 경쟁 가속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끝난 줄만 알았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 놓고 새출발하겠다"던 울리 슈틸리케(60) 축구대표팀 감독은 필드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수문장들도 예외 없이 동일선상에 세웠다. 베테랑 정성룡(29·수원)이 대표팀 엔트리에 복귀하면서 김승규(24·울산)와 김진현(27·세레소 오사카)의 2파전으로 흐르던 주전 골키퍼 경쟁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14일 열리는 요르단과의 축구대표팀 원정 평가전은 '슈틸리케호 수문장'을 확인할 첫 번째 기회다.

스포트라이트는 정성룡의 부활 여부에 모아진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이후 정성룡의 생활은 '절치부심'이라는 사자성어로 요약된다. 출발은 급한 내리막길이었다. 축구대표팀 조별리그 탈락 직후 귀국길에 자신의 SNS 계정에 익살스런 표정의 사진과 함께 '퐈이야~'라는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자신을 걱정해준 팬들을 격려하는 글이었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위기를 헤쳐나온 비결은 더 많은 땀과 더 강한 집중력이었다. 정성룡은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동안 지독하게 훈련에 매달렸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성룡이는 늘 가장 먼저 훈련장 문을 열고, 가장 나중에 닫는 선수였다"고 제자의 최근 모습을 회상했다.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졌다. 지난 해까지도 네티즌의 악플 한 줄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민감했지만, 최근엔 심리적으로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골킥을 할 때 상대팀 서포터가 외치는 '퐈이야'라는 조롱 구호를 응원으로 여길 정도다. 선수 자신은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가면서 책임감이 더욱 강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몫을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변화는 기록으로 나타났다. 정성룡은 올 시즌 K리그 33경기에서 32실점(경기당 0.97골)을 했다. 9월 이후 12경기에서는 8실점(0.67골)으로 실점률을 크게 낮췄다. 같은 기간 9경기 6실점(0.67골)한 김진현과 같고, 4경기에서 6실점(1.5골)한 김승규보다는 앞선다.

김승규는 K리그와 인천아시안게임을 병행하며 눈에 띄게 떨어진 체력을 보강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 달 코스타리카와의 A매치 평가전(1-3패)에 출장했지만 3골을 내줘 슈틸리케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김진현이 파라과이전(2-0승)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선방을 펼쳤지만, 일본 J리그에서 뛰는 만큼 감독에게 경기력을 어필할 기회가 많지 않다.

14일 요르단전과 18일 이란전은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A매치라는 점에서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특히나 5차례의 원정 A매치에서 무승(2무3패)에 그치고 있는 이란과의 맞대결에 선발로 나설 골키퍼가 아시안컵 본선에서도 중용될 가능성이 높아 특별히 주목받는 분위기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