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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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오피스텔을 많이 개발한 K부동산개발업체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공장 터 땅값을 못 치러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인 30억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주거용 오피스텔로 건축허가까지 받았지만 건설회사들이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며 대출 보증을 서주지 않아 기한 내 땅값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한때 '부동산의 꽃'으로 불리며 잘나가던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Developer)들이 요즘 울상을 짓고 있다. 땅만 잡아도 대박이 났던 2~3년 전과 달리 요즘엔 벌이는 사업마다 삐걱거린다. 대출 보증을 서주는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면서 돈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 노다지가 애물단지로=외환위기 이후 2003년까지 개발사업은 거의 '노다지판'이었다. 땅 매입 약정서만 제시하면 건설회사가 지급보증을 서주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었다. 요지에서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 사업 한 건만 성공하면 수백억원대의 수익이 보장됐다. 실제 1999년 분당에서 분양된 매출액 4000여억원 규모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는 세전 수익이 13~15%선인 400억~500억원에 달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 때문에 건설사 임직원뿐 아니라 땅 브로커 등도 이 바닥을 넘봤다. 시행사 모임인 한국디벨로퍼협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생긴 개발업체가 줄잡아 1만여 개다. 이 중 개발 실적이 있는 회사는 2000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사업 환경이 급속히 나빠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쓸 만한 땅이 거의 동나고 경기 침체와 규제 강화로 오피스텔.상가 등의 분양시장이 급랭했다. 지난해 서울 서초동에서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한 B시행사는 분양이 잘 안 돼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사업 부지를 내놨으나 팔지 못해 공사비를 못 받은 시공사가 사업을 떠안았다.

건설사 눈도 싸늘해졌다. 경기도 파주에서 아파트 사업을 추진 중인 K시행사는 1년 반에 걸쳐 인허가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니 이제는 시공사를 못 구해 애가 탄다. "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강도 높은 부동산대책이 예고돼 분양이 잘 되겠느냐"는 게 건설사들의 반응이다.

상가 개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난 4월 골조의 3분의 2 이상 지은 후 분양할 수 있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면서 용인 동백, 파주 교하 등 택지개발지구 내에서 시행사가 내놓은 상업용지가 적지 않다. 선분양을 할 수 없게 돼 자금 확보가 어려운 데다 과잉 경쟁으로 고가 낙찰해 수익성이 떨어져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 "분양가 올린다" 비난도 많아=개발업체들은 분양가를 올리는 주범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시공 능력이 없다 보니 시행.시공 회사와 돈을 빌려준 은행이 각각 이윤을 챙겨 분양가를 상승시킨다는 지적이다.

화성 동탄 신도시의 아파트 부지를 낙찰한 M시행사의 경우 대형 건설사와 시공 계약을 한 뒤 또 다른 건설사에 420억원의 사업이익을 보장해 주면 시공권을 넘기기로 하는 등 이중계약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시공 실적이 없는 개발 업체에 대해 택지개발지구 땅에는 입찰 참가를 제한해 이들의 사업 입지는 더 좁아졌다.

◆ 방향 트는 개발사업=일부 대형 개발업체는 복합단지와 레저시설 개발에 눈을 돌린다. ㈜신영은 충북 청주시 대농 공장부지(13만8000평)에 백화점.행정타운.아파트단지 등을 짓기로 했다. ㈜도시와사람도 경남 창원시 두대동 일대 1만7000여 평에 오피스텔.특급호텔.병원.할인점 등이 들어서는 복합단지 '더 시티 7'개발에 참여하고 얼마 전 오피스텔 1060실을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밀라트는 아산 신도시 상업용지 복합단지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더피앤디AMC 임현욱 부사장은 "복합 개발은 사업계획이 복잡하고, 분양 성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잘 하면 시행 업계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차세대 사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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