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한국에서 운전하다 ‘양보왕’이 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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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알베르토 몬디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자동차는 내게 제2의 집이다. 매일 상당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낸다. 핸드크림, 손톱깎이, 사랑하는 CD들, 박하사탕, 생수 1~2병, 휴지, 물티슈, 작은 휴지통, 입이 심심할 때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견과류가 든 간식봉투 등 내 삶의 ‘부속품’이 모두 몰려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운전하기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신호등이 북유럽에선 꼭 지켜야 하는 규칙, 중유럽에선 권고사항, 이탈리아에선 장식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운전이 험악하다는 이탈리아에서 왔지만 한국에서 운전하다가 당황한 적이 적지 않다.

 사실 운전할 때 이유 없이 다른 차보다 더 빨리 가고 싶은 심리는 자동차 발명 이전부터 있었던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운전자 사이의 경쟁심도 유별난 것 같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곧바로 출발하지 않는다고 뒷사람이 갑자기 빵빵거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머리를 천장에 부딪친 적도 있다. 고속도로에서 대부분의 차량이 추월차로로 다녀 주행차로로 추월해도 되는지, 차로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다녀도 되는지 갸우뚱한 적도 있다. 4년 가까이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을 운전하고 다니면서 한국 교통 상황에 적응했지만 동시에 바람직하지 않은 운전습관도 함께 얻었다. 누가 추월하거나 무작정 끼어들 때 또는 클랙슨을 마구 울려댈 때면 울컥하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를 막아보려고 최근 “이런 상황을 없애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양보왕’이 되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웃으면서 양보하자는 것이다. 이전에는 누군가 끼어들려고 할 때마다 일부러 앞차에 바짝 붙어서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결심을 한 뒤로는 웃으면서 내주게 됐다. 이렇게 양보를 하자 화난 표정이 미소로 바뀌고 어깨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는 행복한 기분으로 변했다.

 운전하는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함께했다. e북이나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큰 소리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따라 노래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짜증나는 시간을 이렇게 즐겁게 바꾸자 자동차는 또 하나의 휴식 공간으로 변모했다.

 약간의 양보로 막히던 길이 원활하게 풀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작은 양보는 자신에게 작은 즐거움이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운전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제2의 집인 자동차를 편하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양보왕이 되면 어떨까.

알베르토 몬디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