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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①정치] 2. 미스터리 벨트 7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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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들에게 사형과 무기징역 등이 확정되자 가족들이 절규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의 1970년대는 세계사에서도 꼽힐만한 ‘미스터리 벨트(mystery belt)’다. 정보부장은 야당지도자를 도쿄에서 납치해 끌어왔다. 윤필용 장군 등 실력자들이 숙청됐으며 사형선고를 받은 공산주의 혐의자들은 바로 다음날 교수대에 섰다. 대통령을 욕하던 전직 정보부장은 파리에서 자객의 총에 맞았다. 정권의 마지막 정보부장은 대통령·경호실장을 죽이고 자신도 사형대에 매달렸다. 70년대는 한국역사가 다시는 돌아가기 어려운 원시(原始)지대다.

미스터리는 풀리기 위해 존재하는가. 김형욱 실종도 밝혀졌고 김대중 납치는 진상의 대부분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1974년 5월 기소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공산주의 사건’이야 전에도 여럿 있었지만 이 사건은 특이하다.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8명이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뒤 20시간 후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사형수에 대한 집행은 신중하기 마련이다.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난 후에야 실제로 형이 집행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20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박정희 독재’를 옹호하는 이들은 흔히 “박정희 집권 중 사람을 죽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8명을 갑자기 죽였다. 그래서 미스터리는 더욱 진해진다.

인혁당은 원래 64년에 먼저 터졌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데모를 배후조종한 공산주의 단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그저 몇년 정도의 징역형으로 끝났다. 그런데 10년 후에 이를 재건했다는 사건에 사형이 떨어진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는 지금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따라서 진상이 밝혀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 하지만 ‘20시간 후 사형집행’은 사건내용과 별도로 중요하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국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이용택씨는 “법원의 확정판결 후 대통령이 사형집행 서류에 결재를 해야 사형이 집행된다”며 “박 대통령은 10년 전에 적발된 이들이 반성은커녕 단체를 재조직하고 월북해 권총까지 갖고 오는 등 대담해지자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박 대통령의 사형집행 지시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위원회는 “당시 1·2심 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한 사형판결에 대해 서종철 국방장관이 사형집행명령서에 사인해 형이 바로 다음날 집행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도 서씨를 직접 조사하지는 않아 서씨가 박 대통령의 허락을 받았는지, 박 대통령의 허가 없이 형집행을 지시한 것인지 등을 규명하지 못했다. 서씨는 현재 노환으로 대인접촉이 어렵다고 한다.

이정민 기자

‘이후락 치매’사실인가 연극인가

김형욱 실종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박정희시대 미스터리 극장’엔 이제 사실상 이후락씨만 남아있다. 그는 청와대비서실장(1963-69)과 중앙정보부장(70-73)을 지냈다. 그는 살벌한 시기에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났고 윤필용 수경사령관과 결탁해 박정희 이후를 도모했다는 의심도 받아 숙청될 뻔했다. 그는 대통령의 신임을 만회하려 도쿄에서 김대중씨를 납치했다. 그는 추리소설 같은 회고록을 몇 권이건 쓸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10·26 후 세인의 눈에서 사라진 지 20여 년이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장우씨 등 소수의 지인과 어울리며 소일했다.

그러나 3년 전 부인과 사별한 후 더욱 은둔에 들어갔다. 아들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도자기 가마터를 겸하던 경기도 광주의 주택을 처분하고 서울시내 모처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건강마저 악화돼 외출도 삼가고 있어 그를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와 관련해 수수께끼 중 하나가 치매여부다. 정보부 후배나 3공 전직관료들에게 그는 치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들 이동훈씨도 “아버지는 치매를 앓아 가끔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적잖다. 3공 때 장관을 지낸 K씨는 “죽기 전에 증언하라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현 정권의 과거사 진상규명의 파도를 피하려 치매로 위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정민 기자

그 때 중앙일보
‘청와대 비서실’ 연재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11년 만인 1990년 11월 19일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 시절의 통치비사를 파헤치는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권부의 상징이던 ‘청와대 비서실’. 연재는 윤필용·김성곤 숙청, 육사 사조직 하나회 결성, 유신, 차지철 권력, 김종필 시련 등 70년대 미스터리 벨트를 헤집었다. 연재는 5공과 6공의 통치비사로 이어졌고 4년5개월 만인 95년 4월 13일 222회로 대장정을 끝냈다.
(위 사진은 1991년 1월 4일 첫회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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