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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에 맞는 민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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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법개정시안에 이어 민사법개점시안도 마련되었다. 법무부는 영세민보호와 국민의 불편해소를 목적으로 한 이 시안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들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루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시안은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부동산등기법을 시속에 맞게 개정하고 「집합건물의 소유관리에 관한 법률」및「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는 내용이다.
60년에 제정된 현행 민법은 법정분가, 상속분 등에 대하여 5차례에 걸친 극히 부분적인 개정을 했을 뿐 그 동안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해서 개정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제5공화국출범 이후의 일이다.
민법제정 후 22년의 세태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전세입주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둘러싼 각종비리가 횡행했다는 사실이다.
셋방살이하던 사람들이 보증금도 돌려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일은 다반사처럼 일어났고, 허술한 등기제도 때문에 부동산사기는 늘고만 있다.
심지어 고리대금 업자로부터 급전을 빌어 썼다가 집을 몽땅 날리는 일도 1년에 2만4천 건씩 일어났다.
정부시안의 초점이 전세권과 주택임차권을 강화, 입주 자를 보호하고 등기제도 보완으로 탈법, 범법을 막도록 한 것은 그런 뜻에서 적절하다.
특히 전세기간을 1년으로 하고 집세 인상 율을 법령으로 명시키로 한 것 등은 경제적인 약자를 보호하고 주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임대차보호법에서 주택과 떨어진 점포를 가진 영세상인들이 제외된 점, 임차권의 승계를 배우자에만 국한한 점 등은 아직도 미흡하다.
한 나라의 법체계가 그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여건을 반영하는 이상 20여 년의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국민들의 생활환경과 의식의 변천을 감안할 때 상법과 함께 민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민법은 국민의 사생활을 규율하는 법일뿐더러 민법이나 상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중대문제인 만큼 그 개정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정부는 지금 건국이후 제정된 3천여 개의 모든 법령에 대한 정비작업을 하고 있다. 민법 및 상법의 개정도 그 작업의 일환이다.
법령의 정비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검토대상은 수천 개 조항에 이르고 이에 수반해서 정리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법령까지를 고려에 넣으면 그 작업은 방대해 진다.
더욱이 한가지 조항만을 놓고도 이해당사자는 물론 학자들의 주장도 저마다 갈리게 마련인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 제 및 호주제의 폐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어느 나라 건 민법은 그 나라의 오랜 관행과 함께 생성된 법이므로 조급한 개정은 법질서에도 영향을 주어 국민생활의 안정을 저해할 우려도 없지 않은 것이다.
물론 영세민보호에 역점을 둔 법무부의 시안은 시급히 제정, 또는 개정되어야할 조항들이다.
시급한 사항만 망라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지적한대로 민사법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막중한 영향에 비추어 전반적인 개정작업은 학계·법조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기구를 두어 좀더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연구, 검토되기를 바란다.
정부의 이번 시안은 민법 전면개정의 시발인 셈이다. 사안의 중요함을 감안, 보다 많은 여론과 연구가 집약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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