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자까지 … 고무줄 사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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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8.15 사면의 대상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다.

15일 650만 명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사면 건의안을 발표했던 여당은 이틀 후인 17일 화물 과다 적재로 전과자가 된 화물차주 25만 명의 전과 말소를 추가했다.

다시 하루 만인 18일엔 단순 1회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정지된 사람(7만여 명 추산)까지 검토 대상에 올렸다. 사면안 발표 3일 만에 680여만 명으로 대상이 늘어난 것이다. 네티즌 사이에선 "이런 추세라면 8.15 이전까지 700만 명은 충분히 돌파할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특히 문제 되는 부분은 음주운전자에 대한 사면 추진. 적정성 여부는 따로 떼어놓더라도 여당은 불과 사흘 만에 입장을 바꿔 오락가락했다. 15일 사면안을 처음 발표할 때는 보충자료까지 돌리며 음주운전자를 제외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다 당 게시판 등에 "생계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는 음주운전 관련자들의 요구가 쏟아지자 송영길 의원 등이 지도부에 건의해 입장을 번복했다. 여당의 사면안이 과연 진지한 검토를 거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변호사 출신 한 의원은 "처음부터 (음주운전자를 사면 대상에) 넣든지, 아니면 당초 입장을 고수했어야 한다"며 "마치 떼쓰니까 들어준 것 같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단순 1회 음주운전자로 한정할 게 아니라 모든 음주운전자를 사면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올라오고 있다.

반면 "음주운전은 살인 행위인데 이를 사면해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도 거세다.

한나라당은 "법무부 장관까지 사면이 쉽지 않다고 했는데 여당이 선심쓰듯 다루고 있다"며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박병석 기획위원장은 그러나 "사면 기준을 발표한 뒤 각계 각층의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투명하고 민주화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라며 "음주운전자 사면에 대한 최종 방침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19일 의원단 총회를 열어 불법 대선자금 연루 정치인에 대한 사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승수 의원단 부대표는 "여당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사죄한다고 하면서 비리 정치인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며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사면을 둘러싸고 민노당과 한나라당이 여당에 맞서는 형국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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