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안 거의 거론 616회담과 각 당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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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
16일 전두환 대통령과 3당대표의 청와대회담은 정오부터 하오3시5분까지 장장 3시간 5분 동안 오찬을 들며 진행.
회담 참석자들은 이재형 민정당대표위원이 11시45분쯤 청와대에 도착한대 이어 김종철 국민당 총재·유치송 민한당 총재가 5분 간격으로 도착해 대기실에 잠시 머무른 뒤 회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낮 12시 정각 전 대통령이 회담장소에 들어서 3당대표들과 악수를 나눈 뒤 잠시 보도진들의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오찬을 겸한 회담에 들어갔다. 전 대통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김 국민당총재에게 『외국에 나가셨다가 언제 돌아 오셨습니까』고 말문을 연 뒤『요즘 외국손님이 많아 대단히 바빴다』 『모처럼 기회를 만들어 오셨으니 하시고 싶은 말씀을 기탄 없이 많이 들려달라』고 했다.
유 총재가 맨 처음 준비해온 내용을 말하려 할 때 한식으로 된 점심식사가 들어오자 유 총재는 『점심을 다 먹고 할까요, 아니면 먹으면서 할까요』라고
전 대통령의 의중을 물었고, 전 대통령은『드시면서 하시지요』라고 권유.
유 총재는 음식도 거의 들지 못 한 채 장·이 부부사건 수습책에서부터 국회활성화· 정치활동 피 규제 자 해금문제 등을 35분간에 걸쳐 빠른 속도로 얘기했다.
말을 거의 마친 유 총재는 『청와대 회담에 참석한다니까 당 내외로부터 꼭 말해달라는 주문이 많더라』며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간 메모용지를 꺼내 대조해보고는 다 언급이 된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바통을 김종철 국민당 총재에게 넘겼다.
김 총재는 가급적 유 총재와의 중복발언을 피해 내각인책 문제에 대해서만 잠시 언급하고 주로 경제문제에 대해 소상하게 건의.
김 총재의 15분간 여에 걸친 말이 끝나자 전 대통령은 이재형 대표위원에게도『말씀을 하시지요』라고 권유했는데 이 대표는 『저는 오늘 얘기를 들으러 왔는데요』라면서 경제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보고.
시종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격의 없고 기탄 없는 대화가 오간 청와대 오찬회담은 정당대표들이 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전 대통령이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
전 대통령은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로 걱정하시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해나가겠다고 즉석 약속을 했다.
특히 전 대통령은 유 총재에게 정치활동 규제 자· 구속 자 석방· 내각인책문제 등에 대해 『유 총재께서 말씀하시니…』 라는 수식어를 세 번씩이나 사용함으로써 제1야당 당수에 대한 특별배려를 한 인상.『언제라도 수시로 만나서 직접 얘기하자』는 전 대통령 말에 유 총재가 『대통령께서 바쁘신 데 그렇게 수시로 만날 수가 있겠느냐』고 하자, 전 대통령은 『저녁에라도 만나면 되지 않느냐』고 적극적으로 대답했다는 것.
청와대 오찬회담은 전 대통령이 주로 듣는 입장이어서 인지 담배를 참석자 중 가장 많이 피웠는데 유 총재가 전혀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을 본 전 대통령은 『교육세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지요』라고 농담을 했는데 이 대표가『유 총재는 술마시는 것으로 대신합니다』라고 거들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민정당>
청와대 회담이 끝난 뒤 하오 3시5분께 당사로 돌아온 이재형 대표위원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상당히 보람을 찾을 수 있는 회담이었다』고 설명.
이 대표위원은 이번 회담은 정치회담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3당대표가 당면한 시국을 극복하고 국민화합차원에서 진지한 충정에 넘치는 의견을 말한 것이라고 대통령이 받아주었다고 설명.
대표위원이 돌아오자 권익현 사무총장·진의종 정책위 의장·이종찬 총무 등 당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당직자들과 오세응 정무장관· 김종호 내무위원장· 이범준 농수산위원장· 배성동· 조남조· 정원민· 하순봉·유근환 의원 등이 모여 이 대표의 설명을 경청.
이 대표위원은 『당에서 준비해간 것 중 상황에 맞춰 주로 경제적인 문제 7, 8가지에 대한 의견만 말씀드렸다』면서『그러나 민정당 건의에 대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가부의 말씀이 없이 배석했던 경제수석 비서관에게 기록토록 해당 정책위의장과 적당한 시기에 세부적인 설명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고 진 의장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대표는『국회라면 의제 외 발언이라고 중단시킬 수도 있는 대목도 섞여있었다』고 의제의 폭이 광범했음을 비치면서 『유 총재가 소상히 많은 것을 언급해 그 다음 차례인 김 총재는 중복되는 것은 좀 빼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직자들과 회담성과에 대한 후속조처를 장시간 폭넓게 협의했으며 즉각 회담에 만족한다는 성명을 발표.
민정당은 이미 준비하고 있던 홍보계획에 청와대 회담 내용을 보충해 곧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 방침.

<민한당>
17일의 민한당 의원총회는 청와대회담에서의 유치송 총재의 발언 등을 성토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드높아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3시간 동안 진행.
△고재청 의원=이번 회담에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민심수습에 대한 인식 차가 큰 것 같다.
이 기회에 우리는 당의 자세와 진로를 재정비해 인식 차에 관한 문제를 심각히 논의하자. 그 엄청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원범 의원=시국을 타개할만한 정치적 결단은 계속 필요하다.
△이관형 의원=우리가 제5공화국에 참여한 것은 동조세력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야당이면 비판세력답게 문제의 시정을 강력히 요구해야지 시혜를 베풀어 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검사들이 텔리비전에 출연해 자기가 수사한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그런 세태가 어디 있는가.
△김태식 의원=대통령을 만날 때는 형식도 중요한데 이번에는 그 점이 소홀한 것 같다. 자찬이나 자학을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당대로 발버둥을 쳐야한다. 당내에 장 여인사건 진상조사소위라도 구성하자.
△유치송 총재=후속조치가 문제다. 차차 당무회의에서 걸려 문제를 풀겠으며 기구신설이 필요하면 구성하겠다. 신문에 내가 현 체제의 변경을 원치 않는다고 보도된 것은 선거제도를 민주적으로 바꾸자는 얘기를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김문석 의원=이번 회담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급히 굴지 말고 서서히 타개해나가자.
△허경만 의원=이 사건의 자금행방을 밝히지 않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김원기 의원=우리가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차원에서 개헌까지 포함한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당이 민주개혁의 주도세력이라는 것을 입증해야한다. 총재가 윤보선 전 대통령을 만나 감명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분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홍성표 의원=회담에 이재형 대표위원이 참석한 것은 이상하다.
△유 총재=회담내용 중 체제운운에 대해 너무 심도 있게 해석하지 말라.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뜻이다.

<국민당>
국민당의 김종철 총재는 회담 후 곧장 당사로 와 소속의원 전원과 원외 당직자들에게 회담경위를 설명하고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
△김 총재=내가 주장한 것은 ①장 여인 사건과 관련된 장관들의 추가인책 ②정치발전특위구성 ③비상경제대책특위구성④팽배하고 있는 「한탕주의」의 소탕 등 4개 항목이다. 한탕주의 문제는 요즘 영동일대의 고급술집 앞에 안테나를 단 차가 많다고 예를 들어 얘기했다.
△임덕규 의원=우리당의 주장에 대해 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나.
△김 총재=가부간의 대답은 없었다.
△임덕규 의원=전 대통령이 장 여인사건에 관해서는 뭐라고 했나.
△김영생 의원=장 여인사건에 관해서는 무슨 조치가 있을 것 같던가.
△김 총재=인책문제를 재확인할 정도다. 또 전 대통령은 정부·국회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으므로 제도는 시행해보고 잘못을 고치자고 했다.
△이성수 의원=회담의 결론이 없지 않은가.
△김총재=즉답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앞으로 두고 보아야겠다.
맡겨 논 보따리 찾으러 간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전 대통령은 정치발전문제를 거론할 시기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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