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귀 국내서도 만들 수 있다|서울대 의 공학 팀「내이에서의 전기현상」측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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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청각 장애자(귀머거리)도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에 비켜 설 수 있게 됨은 물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머지않아 오게 될 것 같다. 최근 서울대학교의 노관택(의대 이비인후과), 민병구(의대 의공학), 임덕환(의대 의공학), 이충웅(공대 전자공학)교수 팀은 국내 최초로 실험동물을 사용하여 내이에서의 음성의 전기현상을 측정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전자청력장치의 실용화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청각기관이 손상된 환자에게 어떤 종류, 어떤 크기의 신호를 주었을 때 청신경이 가장 반응을 잘 하는지, 즉 음성을 어느 정도의 전기신호로 변환시켜 주었을 때 가장 잘 들을 수 있는지, 그 최적 조건을 찾아낸 것을 의미한다.
전자청력장치도 요즘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장기의 하나. 인공장기는 기능이 불완전하거나 정지된 장기의 기능을 대행하는 인공장치로서 반도체·컴퓨터 등 전자공업기술과 고분자·금속 등 재료공업기술의 발달, 그리고 의학과 공학의 가교역할을 하는 의공학 연구의 가속화에 따라 지난 20년간 꾸준히 발전돼 왔다.
이미 신장·췌장·혈관·기관·시도·뼈·관절·심장 밸브 등 이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고 이 밖에 심장·심장 판·피부·두개골·귀·코·성대·담관·난관·자궁·요도 등의 인공장기가 개발 중에 있거나 일부 시험 사용 중에 있다.
인공 귀의 경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귀 연구소를 중심으로 멜번·파리·빈 등지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 현재 약 2백 개의 인공 귀 장치가 사람에게 이식되어 그 효과를 시험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서울대 팀의 내이에서의 소리에 대한 전기신호 처리현상을 관측하는데 성공한 것은 국내에서의 인공 귀 개발을 위한 중간기지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귀는 외이·중이·내이로 나눠지는데 외이와 중이 사이에는 0·1mm 두께의 고막이 있고, 중이에는 쌀알 크기 만한 이소골이라는 3개의 뼈(퇴골·침골·광골)가 매달려 있으며, 내이는 소리를 느끼는 와우기관과 몸의 평형 상태를 느끼는 전정 기관으로 되어 있다.
와우기판은 기저 막에 의해 위(전정개), 아래(고실계)로 나눠져 임파 액이 가득 차 있으며 기저 막에는 수 만 개의 유모세포가 돋아나 있다.
등골에서 전정창을 통해 전정 계로 들어온 음파의 진동이 유모세포를 진동시켜 이 곳에서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이 신호가 기저 막에 연결된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소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난청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청신경에 이르는 청각 기관에 이상이 생겨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외이에서 중이사이의 난청을 전음성 난청, 내이 계통에 이상이 있을 경우를 감음 성 난청이라고 한다.
그 중 주로 고막 파열이나 중이염 등으로 오는 전음 성 난청은 고막이나 이소골의 성형 수 술, 또는 보청기 착용으로 청력을 회복할 수가 있으나 중이염의 장기방치·약물중독·고소 음 또는 선천적인 내이 발육부전으로 오는 감음 성 난청은 수술이나 보청기로는 청력회복이 어렵다.
후자의 경우는 주로 유모세포가 손상되어 있기 때문에 와우 각 내에서 음성 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능력이 상실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 변환을 대행해 주는 것이 인공 귀, 다시 말해 전자청력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체의 음성신호 처리기·체의 송신기·체내 수신기·백금 전극부분으로 구성되는 데 포킷 용 신호처리기에서 외부의 소리를 그 환자(귀머거리)에게 적합한 전기신호로 바꾸면 송신기를 통해 체내(귀 뒤쪽)에 내장된 수신기에서 이 신호를 받아 채널을 통해 청신경에 연결되어 있는 백금전극으로 보냄으로써 소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외이도에서 청신경에 이르는 중간 경로를 생략하고 외부에서 청신경까지 직접 음파를 적절한 전기신호로 바꾸어 보내는 셈이 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넓은 주파수 범위의 소리를 인위적으로 만든 전기신호와 음성전달 효과 면에서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번 실험 성공으로 이 문제의 해결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대 팀은 실험동물로 기니아 피그(해돈)와 고양이를 이용해 정강 귀에서의 소리에 대한 뇌파를 측정하고 다시 내이를 손상시킨 후 여러 가지 전기신호에 따른 뇌파를 측정하여 정상 귀에 가까운 파형을 얻어낸 것이다.
서울대 팀은 이 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테스트도 곧 착수할 예정인데 전자청력장치가 실용화되면 15만 명 내외로 추산되는 중증 난청환자의 정서적 안정은 물론 현재 20%선인 독화 능력을 70∼80%선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장차는 정상인과 별 차이 없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게 되리라고 보고 있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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