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화술 ‘철의 여인’ 대처도 녹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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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82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대처 영국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난 모습. [AP=뉴시스]

‘위대한 소통자’로 불렸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화술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도 누그러뜨리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언론들은 10일(현지시간) 일제히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 간 전화 통화 내역을 보도했다. 두 사람은 냉전 체제 종식을 앞당긴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러나 통화가 이뤄질 당시는 1983년 10월로, 미국이 영국의 보호령인 중남미의 그라나다를 침공한 직후였다. 대처 총리는 미국의 개입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미국 측으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해 격분했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대처 총리=대처입니다.

 ▶레이건 대통령=내가 거기 있었다면 들어가기 전에 모자부터 던져 넣을 거요.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을 지 알 수 없을 때 모자부터 던져 넣던 관행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처 총리가 한결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대처 총리=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레이건 대통령=아녜요. 당신을 당황케 해 매우 유감입니다. 당신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우리 때문이라는 겁니다.(그는 기밀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게 미국 쪽 사정 때문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는 “계속 정보가 새나가서 골치”라며 “우리가 걱정한 건 당신 쪽이 아니라 우리 쪽”이라고 했다.)

 ▶레이건 대통령=부디 이해해 주세요. 우리 스스로 기밀 유지를 못하는 게 우리의 약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대처 총리=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매우 친절하시군요, 로널드. 낸시(레이건의 부인)는 어떤가요.

 ▶레이건 대통령=잘 지냅니다.

 ▶대처 총리=안부를 전해주세요.

 영국 BBC방송은 이 대화를 두고 “은막 출신의 대통령이 유창한 언변 까지 갖췄다”고 평했다. 이 녹음은 미국의 레이건도서관이 보관해 오던 것으로 윌리엄 도일이란 작가가 청구한 지 18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실제 백악관 상황실에서의 대통령 대화가 공개된 건 처음으로 알려졌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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