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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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도심 한가운데엔 녹색의 선이 그어져 있다.
그걸 「레바논판 베를린장벽」이라고 명명한 사람도 있다.
76년에 3만명의 아랍평화유지군이 진주하면서 갈라놓은 구획이다. 베이루트는 그 녹색 선을 따라 동서로 나뉘었다.
동쪽은 기독교 지역이다.「레바논군」이라고 불리는 민병대와 레바논전선이라는 정치단체가 통치하고 있다. 서쪽은 회교지역. 레바논 회교 민병대와 시리아군, 그리고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차지하고 있다.
5㎞에 달하는 이 녹색의 선을 따라 거의 매일 포격과 기관총 사격이 오가고 있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있다. 거리의 양쪽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10대 민병대원들이 모래주머니를 쌓아올린 벙커 너머로 대치하고 있다. 이런 풍경은 스산하기만 하다. 어떤 곳은 불과 몇m의 거리에서 마주보는 경우도 있다.
거리엔 군데군데 전투지역임을 표시하는 빛나는 흰 리번이 둘러져 있다.
생활상이 모두 말이 아니지만 동부는 서부보단 낫다. 오래 전부터 기반이 다져진 경제안정과 정치적 단결을 과시하고 있다. 상점의 물건들도 풍부하다. 수입식품과 유럽에서 들여온 옷감, 의류들. 최신형 파리 패션까지 등장하는 판국이다.
그에 비해 서부는 가뜩이나 혼란하고 황폐한 아랍주민 사회에 피난민까지 붐벼 아수라장이다. 78년에만도 이스라엘이 레바논남부를 침공하는 통에 무려 l5만명의 피난민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그래서 피난민들이 남의 집까지 무단 점거하는 「무법자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베이루트는 화려한 과거가 있다. 역사엔 기원전 15세기께 이 도시가 출현했다. 페니키아인들의 고대 문화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헤롯·아그리파」시대(기원전후)엔 극장을 포함한 아름다운 건축들로 도시는 장관을 이루었었다. 로마시대에 이 도시는 그리스 학문과 로마법 연구 학교로 널리 명문을 떨쳤었다. l9세기엔 아메리컨 대학(l833년)과 프랑스인의 성요셉 대학도 섰다.
중동지역의 종교, 문화중심지 베이루트는 20세기에 들어 자유무역의 중심지로 또 한번 번영을 누렸다.
「중동의 파리」라는 명성도 얻었었다. 휘천루들이 숲을 이룬 도시의 환악을 향수처럼 외는 기업인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베이루트의 영화는 또 한번 도전 받고 있다. 「녹색의 선」으로 나뉘어 싸우는 이 도시에 다시 이스라엘군이 진격해오고 있다. 국제공항 바로 3㎞까지 육박한 이스라엘군은 서부베이루트의 PLO본부도 폭파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입성은 이 도시 역사에 또 하나의 상흔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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