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헛 슈팅만 18개|약체 인도의 자살골로 겨우 1-0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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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부산=박군배 기자】화랑은 병들었다. 극심한 난조에 빠져 있음이 9일 아시아축구 3류국 인도와의 대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비록1-0으로 이겼으나 그 골은 후반 20분 인 도FB「슈디프·차페지」(17번)의 헤딩슛으로 인한 자살골. 화랑은 행운으로 1승을 보탠 것이다.
서전에서 강호 아인트호벤 필립스에 시달림을 받아 주눅이 들었는가, 지난7일 인도네시아와의 2차 전에서 출전,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냈던 화랑은 최 약체로 평가되는 인도를 맞이하고서도 답답한 축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2만여 부산축구 팬들도 경기가 끝나자 화랑에 야유를 퍼부어 댔다. 화랑의 플레이는 근래 없던 최악의 수준으로 후퇴, 불과 5개월 앞둔 뉴델리아시안 게임에 심각한 적신호를 던졌다.
인도는 인도네시아와 같이 선수전원이 골문 앞만 지키는 수비일변도의 변칙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격력이 워낙 약해 화랑수비는 유유자적, 따라서 일방적인 공격으로 시종 했다.
그러나 화랑의 문전접근은 요령부득의 단조로운 센터링이나 중앙돌파만 고집, 제공 력이 좋고 침착한 지역방어를 편 인도수비를 교란할 수 있는 지혜가 모자랐다. 수년 전까지 한국축구의 최대병폐로 일컬어지던 주춤거리는 문전 골 처리, 슈팅의 부정확이 되살아났다.
특히 전술의 빈곤이 기막힐 정도였다. 인도수비진을 우롱할 수 있을 정도의 발빠른 윙 플레이어를 보유한 화랑은 줄기찬 양쪽측면 돌파로 인도의 문전수비지역을 확대시킴으로써 훨씬 효과적인 득점찬스를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화랑은 계속해서 주전을 총동원, 전반 8개, 후반 10개 등 모두18개의 슈팅을 시도했으나 한 개의 득점도 올리지 못했다.
이날 제 페이스를 지키는 수준 급의 활약을 한 선수는 오른쪽 FB 박경훈 뿐 나머지 선수들은 한결같이 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음이 확실했고 특히 스트라이커 최순호의 난조가 두드러져 화랑공격력 급전직하의 요인이 되었다.
김정남 화랑코치는『선수들이 뛰지를 않고 멍청한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입을 다물었다. 지난5월 킹즈컵 대회(방콕) 직후, 화랑의 부진에 자극 받아『코치 직을 그만 두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던 심정을 다시 느끼는 표정이었다.
인도 팀의 동독인 코치「파이퍼」씨(40)는『화랑은 전술상의 두뇌부족으로 고전했다. 한국선수들은 선수개개인의 기량을 결집, 팀웍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훈련부족인 것 같다. 그러나 인도의 수비능력은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서는 수준 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골을 넣지는 못해도 반면에 쉽게 실점하지는 않을 만한 전력은 있다』고 경기소감을 말했다.
일부에서는 화랑선수들이 최근 들어 슬럼프에 빠진 것은 정신적으로 안정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석유공사프로축구팀 창설과 관련, 많은 선수들이 스카우트문제로 들떠 있다는 것.
이날 현재 화랑은 2승1패로 11일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예선A조의 2위로 준결승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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