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광기(狂氣)를 잠재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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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웃과 정을 주고받던 평범한 영국 청년들이 자국의 수도 런던에서 죄 없는 이웃을 살상한 7.7테러로 온 세상이 경악하고 있다. 이 같은 대형 인재(人災)가 발생할 땐 언제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왜?'란 원인을 찾기에 분주하다. 이번에도 사회의 비주류로 존재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영국 무슬림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접촉하면서 폭발한 사건이란 해설이 나오고 있다.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7.7테러범들보다 더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영국의 무슬림들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과 인연이 닿기만 하면 테러분자로 변할 수 있는 테러 예비군단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이번 사건의 장본인들이 단지 광기(狂氣) 어린 살인마였기 때문일까. 그들이 주변에서 인기 만점인 선생님으로, 운동 잘하는 부잣집 청년으로, 착한 아들로 지냈다니 이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주저된다.

아마도 그들은 이라크전을 주도한 영국에 대해 무슬림인 자신들이 신의 이름을 빌려 역사적 심판을 해야 된다는 왜곡된 믿음 때문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면서 테러분자가 됐을지 모른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지난달 국내에선 최전방 부대 감시소초(GP)에서 발생한 인재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사태 발발에 대한 분석은 그만두고, 일반인들은 아무리 분노가 커도 제정신으로 동고동락하던 동료를 향해 무차별 총격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 가장 큰 의구심을 품는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정신병자가 아닌 '반사회적(反社會的) 인격장애자'가 저지른 비극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사고가 지리멸렬하고 비현실적인 정신병자(정신분열병)와 달리 생각이 논리적이고 정신기능도 '정상'이다. 망상이나 환각.우울감도 없어 일견 보통사람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범죄도 최대한 자신에게는 피해가 안 가도록 주도면밀하게 저지른다. 모든 잘못을 나 아닌 세상이나 남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반성도 안 한다.

위의 두 사건이 전자는 왜곡된 사상을 가진 확신범에 의해, 후자는 인격장애자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더라도 삶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만일 참극이 정신 나간 사람들(정신병자)에 의해 충동적으로 저질러진다면 처방이 훨씬 쉬울 수 있다. 그저 그런 이들만 잘 찾아내 격리치료하면 되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평상시 나와 더불어 웃으면서 지냈을 보통 사람들이 내린 나름의 논리와 판단하에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불행이요, 대처하기도 어렵다. 사실 '범죄(특히 흉악범죄)는 미친 사람이 저지른다'는 생각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낮다.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상황에 직면하면 광기를 발할 수 있다. 광기는 현실을 균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데에서 싹튼다. 자신의 왜곡된 생각을 고수하다 보면 점차 현실감이 없어지면서 객관적 시각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능력도 사라진다. 결국 엄청난 불행도 손쉽게 저지르게 된다. 전쟁도 테러도 이런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다행히 광기는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존중하면서 대화를 통해 나와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순화될 수 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광기를 잠재우고 평화로운 삶을 만드는 출발점인 것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