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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 왜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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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인터넷 포털 업체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균 73%의 네티즌들이 찬성을 표명했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란은 과거에도 계속돼 왔지만 현재와 같이 도입 찬성에 압도적 의견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른바 '넷심'을 결집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인가?

사이버 공간은 익명성(匿名性)과 익면성(匿面性)을 특징으로 한 영역이다. 오프라인보다 다양한 자유와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다. 한국은 초고속 통신망 구축과 인터넷 이용시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는 새로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청에 접수된 사이버 범죄 신고 건수도 2002년에 11만8000여 건, 2003년에는 16만5000여 건, 그리고 2004년에는 20만 건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신고되지 않은 사례는 그 몇 배에 이를 것이다.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급속히 늘어가는 것이다.

사회학자인 고프만은 현대사회의 인간행위를 전면영역과 후면영역이라는 공간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였다. 전면영역은 사회적 규범이나 역할과 같은 개인에 외재하는 사회적 강제가 인간행위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반면 후면영역은 이러한 사회적 강제가 완화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이버 공간과 부합하는 면이 많다. 현실에서의 개인은 두 영역을 넘나들며 생활하는데, 삶이 복잡다단해질수록 후면영역의 역할은 오히려 중요해진다. 긴장의 이완과 새로운 에너지 충전의 필요 때문이다. 최근의 문제는 이완의 공간에서 새로운 긴장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컴퓨터 너머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데 있다.

물론 인터넷 실명제가 이러한 긴장과 불안, 그리고 불신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할 것이다. 정보통신부의 실명제 실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범위도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형태가 완전 실명제가 되든, 부분 실명제가 되든 사이버 일탈에 대한 예방적 효과는 클 것이다. 실명제 실시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고, 이미 대다수 기관과 업체에서 실명제가 사실상 실시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커뮤니티와 게시판을 이용한 활동이 왕성한 나라다. 이를 통한 정보의 확산 속도는 놀라우리만큼 빠르다.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우리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회원 가입 시 실명확인을 필수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지만, 비회원들이 접할 수 있는 콘텐트의 내용이 여전히 많다는 점과 댓글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고, 고정 IP가 아닌 유동 IP 이용 때 추적과 판별에 보통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 등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문제들이다.

'영리한 군중(Smart Mobs)'의 저자인 레인골드는 한국의 '개똥녀' 사건에 대해 '요즘 세상은 국가와 같은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아닌 우리의 이웃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원하지 않는 자신의 정보와 일상의 유통이 없어지려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의 확립과 정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도 실명제를 통한 책임감 있는 자기 행위의 관리와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이제 저 너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배 영 숭실대 교수.사회학

◆ 약력=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연세대 문학박사. '사이버 공간의 사회자본' 등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