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연구가 본 궤도에 올랐다|연구현황과 학계 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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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미 수교 1백 주년을 맞으면서. 미국에 대한 맹목적이고 피상적인 인식의 단계를 넘어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미국과 미국인을 이해하려는 기운이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이른바「미국 학」이란 학문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관심 속에 점차 자기바탕을 다져 가며 의욕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한미관계 2세기의 문턱에 선 지금 국내 미국 학의 현황은 어떠하며 과제는 무엇인가.
「미국 학」(American Studies)이란 말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학자들이 모여 미국 학의 연구모임인「한국 아메리카학회」를 조직한 것은 65년의 일이다.
초기엔 미국문학·미국 사 전공학자들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점차 미국의 정치학·사회학 종교학·철학·법학·심리학·예술분야 등 미국사회의 종합적 연구를 위한 범 학문적 토대를 형성해 가고 있으며 현재 회원은 3백 여명.『미국 학 논집』이란 학회지도 내고 있다.
또 서강대·전남대 등 몇 군데 대학에선 부전공으로 미국 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단국대·원광대·청주대 등에선 미국 학 관계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서울대 미국 학 연구소의 활동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아메리카학회 김용권 회장(서강대 교수·미국문학)은 미국 학이 한국학·동양학 같은 지역연구(Area Studies)로 접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학문과의 혼동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학을『지역연구의 한 분야로서 미국의 독특한 문화형태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학문간의 협조를 토대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 국내에서의 미국 학의 연구현황은 어떠한가.
미국 학의 현황을 학문별로 조사 평가한 한 연구(『미국 학 논집』제10집) 에서, 우선 한국 신학계에서의 미국신학 연구 동향을 분석한서광선교수(전 이화여대·철학)는 국내엔 미국신학의 역사적 흐름을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실적이 극히 드문 반면 60∼70년대 미국 신학개의 두드러진 동향에 대해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신학계의 관심과 신학태도가 미국신학계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식의 영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철학계도 사정은 비슷하여「미국적 철학사상」의 연구가 부진한 편이라고 서 교수는 지적했다.
미국의 근대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마르쿠제」는 논의되지만 그 사회의 가치관과 사상적 구조에 대한 연구는 부진하다는 것
역사학 분야에선 70년대에 들어서 60년대에 비해 논문이 질·량 면에서 크게 향상됐으며 특히 한미관계사는 계속하여 수적으로 으뜸을 차지했다.
김경동 교수(서울대·사회학)는 사회·경제분야의 국내 미국 학의 실적을 평가하면서, 한국은 1945년이래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배효과와 사회·문화적 전시효과의 영향권에서·벗어나기 힘들었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미국학도 이러한 역사적·국제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분야의 미국학적 실적은 특히 그 전시효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반면 경제학은 정치·경제적 지배효과에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된다는 것-.
경제분야의 실적은 이러한 지배효과에서 생기는 한-미간의 갈등이나 의존관계를 비교적 예민하게 다뤄 왔다고 평가했다.
교육학 분야를 살핀 차경수 교수(서울대·교육학)도 앞으로 미국교육학연구는 한국의 역사적·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의 교육이념이나 교육방법을 한국에 적응시키려는 데서 탈피하여 한국교육의 이념을 정립하고 한국사회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국내에서의 미국 학은 해방 이후 특히 60년대 이후의 연구실적을 토대로 전환점을 맞고 있는 느낌이다. 엄정식 교수(서강대·철학)는『전에는 미국사회에 대해서 각분야에서 한마디씩 하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한 주제를 설정하고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할 만큼 진척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제로서 풀어야 할 문제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우선 현실문제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 그 바탕을 이루는 사상적 구조와 철학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점이다. 또 미국 학은 학문간의 협조를 토대로 전체적인 관련을 맺어야만 실적이 기대되는 학문인 만큼 각 학문간의 협동연구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학문의 무분별한 도입을 지양하여 한국의 문화적 주체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에서 연구를 진척시켜 나가야 할 것이란 점이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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