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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민한 사령탑에 들어 본 시국수습의 길|어음사기 탐지 못한 건|행정능력이 미숙한 탓|이재형 민정당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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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국수습을 위한 정계의 노력은 이번 주가 고비가 될 전망. 3당 사무총장회담에 이어 대통령·정당대표 면담이 실현될 것 같고 제5공화국 들어 가장 본질적인 정치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각 당이 어떤 자세로 무슨 내용의 수습안을 제시할지 이재형 민정당 대표위원과 유치송 민한당 총재에게 미리 풀어본다.
지난 약20일 사이에 이재형 민정당 대표위원은 몇 차례 청와대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국수습대책에 대해 이 대표위원은 매우 솔직하게, 또는 상당히 대담하게(?) 진언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대체로 그가 헌책한 민정당 의사는 결과적으로 실현됐거나 채택된 듯이 알려졌다.
3당3역 회담이나 예정된 대통령과 정당대표 면담도 그 과정에서 마련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한 열흘간이 시국도 수습하고 난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봅니다』
오는 11일께 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정당대표 면담과 그 전후의 며칠간이 시국수습의 큰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이 대표위원의 시사다.
-영수회담이 열리면 야당측은 여러 가지 요구를 내놓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미리 어떤 얘기는 괜찮고 어떤 요구는 곤란하다는 식으로 사전 검열을 해서야 되겠소. 그런 모임이 마련되면 서로 기탄 없이 무슨 얘기든 다 주고 받고, 그런 모임의 취지와 격에 맞게 현 시국이 요구하는 공통분모를 찾아야지요.』
『난국일수록 민한당은 민한당의 직분을 다하고 국민당은 국민당의 맡은바 일을 다해야하고 민정당도 민정당의 영역을 잘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정국이 다 제대로 될 것 아니요. 혹자는 야당들이 엉망이 되면 민정당은 좋아하겠지 라고 말합디다만 그런 게 아니야. 야당이 엉망이 되면 민정당도 어려워져요. 그게 내 지론입니다.』
그는 다만 우리 정계가 단일 야당권이 아닌 이상 「영수회담」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민한당측이 전두환 대통령과 유치송 총재간의 단독면담을 요구하는데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시국수습에 비밀방안이 있고 공개방안이 따로 있소이까. 옳다고 믿는 일은 옆에 누가 있더라도 당당하고 담담하게 다 애기해야지요.
그쪽에선 유 총재의 「격상」이니 하는 얘기도 나오는가 봅디다만 그런 계산을 가지고 임한다면 정도도 아니오,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어려워요. 만취(유총재)인품을 내가 아는데 그럴 분이 아닙니다.』
-야당측이 민주화개혁 등을 요구하는데 개헌사항까지 논급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믿소.』
-요즘 민정당 의원들간에 의견개진이 활발하더군요.
『당내민주화다, 활성화다 하는데 민주화라니 묻고 싶소이다. 주인이 누구인데 누구더러 민주화를 요구하느냐. 그 동안 어디 갔다 왔느냐구요. 한 달 전에는 그런 얘기를 왜 안 했는지,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라고 내가 번번이 말했지만 그 때엔 말못하고 이제 와선 말들이 나오니…. 땅 짚고 헤엄치라면 누가 못 칠까. 그러나 눈비가 오면 납작 엎드리는 사람들에겐 권리가 있어도 지키기 어렵고 권리가 잘 가지도 않아요.』
『의원들이 평소 얘기를 해야 당이 국민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민정당 의원들이 요즘 말을 좀 하니까 국민이 바라는 것, 국민이 고민하는 것을 민정당도 바라고 고민하고 있구나 하는걸 국민들이 알게 돼쟎아요. 그래서 평소에 말도 하고 주장도 해야되는 건데…. 그렇지만 너무 성급해서는 안 돼요. 금방 디딘 발자국에 물고기를 바라서야 되겠소.』
조선조 사간원이란 기구에는 직언이란 벼슬이 있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바른 말을 국왕께 하기 위해 있는 벼슬이 직언이다. 그러나 「직언신직언」(직언은 바른말을 삼간다)이란 역설적인 말이 있었다고 한다.
직언은 직언을 하되 가령 모욕적이거나 강요하는 직언을 해서는 안되며 품위를 지켜가며 대국에 맞게 직언을 해야한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위원은 혼잣말처럼 『경란도 해보고 신산을 겪은 사람이 적어서…』라고 했다. 소속의원들 중에 더러 미숙함이 있음을 염려하는 말이었다.
-불신풍조니, 「신뢰부도」니 하는 말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신뢰가 회복될는지요.
『국민적 반성도 해야되고 정권적 반성도 해야죠. 아직도 남아있는 전근대적 의식잔재를 국민들도 빨리 버려야죠.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야지 사소한 자극이나 부분적인 의혹으로 전체를 불신하고 초기의 관념이나 인상을 진상으로 단정하는 경향은 함께 노력하여 개선해야 합니다. 굳이 장 여인사건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외다. 마른풀에 불 번지듯 쉽사리 국민여론이 달아오르고 쉽사리 망각하고 해서야 안되지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말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분석과 논리추구를 한 후에 결론을 내리고 이런 결론을 바탕으로 여론이 형성된다면 누가 오도할 수도 없고 쉽게 잊혀지지도 않을 거예요.』『정권적 반성이란 제5공화국의 도덕적 가치성은 신념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확신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행정능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뜻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가령 생계비를 겨우 버는 구멍가게까지 입회조사를 하는 국세청이 이철희의 대화산업인가에 대해서는 왜 한번도 조사를 않았던가. 국민들은 그걸 보고 사실여부는 아랑곳없이 권력비호가 있으니 조사를 안 했겠지 라고 생각하게 되거든. 또 전 정보부 요원을 여러 명 끌어들였다는데 그렇다면 「대화」의 존재는 정보기관이 가장 먼저 알았을 테고 몰랐다면 얘기가 안돼요. 그런데도 이런 사건이 이제서야 이렇게 터졌으니 행정능력이 아직은 미숙함을 시인해야지.』
지난 5월16일 시국수습방안 5개항을 건의한 이래 바쁜 일정을 보내온 탓인지 임시국회 폐회(l일) 무렵엔 건강이 나빠져 3일엔 혈압이 2백20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수습5개항이란 ①당 개편 ②내각인책 ③수사철저 ④주변정리 ⑤수사가 미진한 경우 국정조사권발동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늙은이를 이렇게 데려다 놓은 건 잔소리하라는 거지 뭐. 내가 할 일은 노파심에서 잔소리를 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어떤 아는 이가 합죽선 부채 한 자루를 보냈는데 거기에 「십년마일검 금일증군파」(10년 동안 칼 한 자루를 갈아 오늘 그 대가 잡도록 주노라)라는 글귀가 있더군.』이 글귀는 10년간 은퇴했다가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한 이 대표위원의 수습5개항 건의를 잘 비유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앞으로도 잔소리를 하겠다면서도 이 대표위원은 『장가부호라는데…』라고 한 마디를 곁들이고는 다시 『앞으로 정국추이를 잘 지켜보고 언론도 대국적으로 좋은 의견을 많이 내달라』고 당부했다.
회견·송진혁 정치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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