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테러,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

14일 오후 1시(현지시간) 독일의 수도 베를린 중심가. 모든 게 정지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오가던 시민들은 일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지하철을 포함한 모든 열차도 바퀴를 세웠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정규방송을 중단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다. 2분간 7.7 런던 폭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긴장한 모습과 침울한 표정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마치 다음 테러의 대상으로 베를린이 예약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테러리스트의 관심을 끌 만한 행사가 코 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다음달 16~21일 쾰른에서 제20차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열린다. 세계 각국에서 80만 명이 모인다. 전 세계에 신속히 뉴스를 타전할 언론인도 4000명이 온다. 때맞춰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첫 외유지로 고국 땅을 택했다.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들은 최근 기독교의 상징인 교황과 바티칸에 대한 테러를 시사해 왔다.

독일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않은 나라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런던 자폭테러 이전부터 테러에 대비해 착실한 준비를 해왔다. 독일 의회는 9.11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반(反)테러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올 5월까지 단속을 강화하는 쪽으로 세 차례나 법을 수정했다. 지난해엔 베를린에 반테러센터를 만들었다. 테러를 당한 희생자의 구조와 치료를 위한 재활의학센터도 올 초 문을 열었다. 지난 5월에는 라이프치히에서 구조대원 1400명이 투입되는 가상 테러 대비 훈련을 벌였고 헤센에선 여름축제 중 생화학 테러 대비 훈련을 했다.

7.7 테러를 당한 영국의 경우 테러는 사실상 예정돼 있었다. 미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보냈고, 이슬람 단체들의 활동이 빈번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거듭된 대비와 훈련으로 '테러를 당했지만 테러리스트에 굴복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셋째 규모의 이라크 참전국이다. 더구나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테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