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체미 3년 본대로 들은 대로…김재혁 전 특파원|「행운의 여신」신봉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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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사람들은「행운의 여신」(Lady Luck)의 신봉자들이다.
행운의 여신이 언젠가는 미소를 보내 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부자·재벌들을 부러워할망정 미워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만큼 재벌들이 존경을 받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
80년 미국대통령 선거 전에서「카터」민주당후보와「레이건」공화당후보가 맞붙었던 경제정책쟁점 중의 하나는 감세 안을 포함한 세제개혁 문제였다. 「카터」는 면세혜택을 받아 온 기업의 접대비에도 세금을 물려야 하고, 유가파동으로 인한 석유회사의 횡재에도 과세하는 등 부유층의 담세 율을 크게 높이는 대신에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와 저소득층의 소득에 대해서는 감세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레이건」은 30% 연차 감세 안을 골자로 한 레이거노믹스를 발표하고, 미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일하지 않겠거든 먹지도 말라』는 입장을 취해 저소득층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대폭 삭감해 버렸다. 부유층의 실질수입에는 손대지 않은 레이거노믹스를 두고 일부에서는 부익부·빈익빈의 경제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의 정치인·경제학자·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세제개편문제가 오래 동안 논의돼 오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프로포지션 13」(제안 13호)으로 구체화된 세제개혁의 골자는 부자는 세금을 더 물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세금을 덜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세제개혁안이 의회에 상정될 때마다 번번이 부결되곤 한다. 그것도 언제나 압도적 표 차로 거부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입법에 반대하는 로비활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의원들이 세금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이 부자·가진 자가 어떤 형태로든지「처벌」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은 스스로 부자가 되는 것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일 당장 자신이 부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등 사회적·제도적으로 불리하게 대접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낙관적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벌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 같은 것은 없다. 더구나 장차 자신을 얽매게 할지도 모르는 조치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려는 미국인들은 행운의 여신을 믿는다. 그들은 영화『자이안트』에서 보았듯이 어느 날 석유가 펑펑 쏟아져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운이라는 것에 일생을 걸기도 하고 주사위를 굴리듯 내기와 도박을 좋아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다.
미국사람들의 일상대화 가운데는『노다지를 만난다』(strike it rich),『달에 맡기고 부딪쳐 본다』(taking my chance),『과감하게 모험을 한다』(taking a plunge), 또는『가진 돈을 몽땅 내기에 건다』(shooting the works)는 따위의 다분히 모험적이고 도박 적인 표현이 많다. 실제로 벼락부자가 되기도 하고 갑자기 파산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미국사람들은 도박이나 내기를 아주 즐긴다. 전국도박위원회(NGC)가 최근 보고한 것을 보면 미국 성인의 3분의2정도가 스포츠경기나 운수에 맡기는 노름에 돈을 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적인 노름이 많기 때문에 도박에 쏟아지는 달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밝혀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카지노·경마·복권 등 합법적인 노름에만도 연간 2백억 달러(약 14조원)이상이 몰리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에 있는 경마장의 경기장(OTB)은 언제나 만원이다. 출퇴근길에 보면 담배 가게나 신문판매대 앞에는 숫자 맞추기 복권을 사려는 소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공공TV는 경마실황을 중계하고, 뉴욕타임스도 복권당첨번호를 보도해 준다.
미국사람들의 노름 벽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동된다. 사무실에서도 툭하면 동전을 던져『앞면(Head) 이냐, 뒷면(Tail)이냐』를 외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판 속에서도 풋볼 경기에 돈을 건다.
경마에서 이긴다는 것,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잡는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또 다른 커다란 꿈이 되고 있다. 행운의 여신과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을 주사위 굴리기나 복권 뽑기 같은 것으로 믿으려는 미들 아메리칸 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 준다.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면서도 인생의 예지와 생활의 안정감이 점차 허물어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이 오늘의 미국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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