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논란 고려대 총학생회장 결국 자퇴 수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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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고려대학교 학생이 아니지만 학우들에게 받았던 뜨거운 사랑과 이번 사태로 인해 받았던 쓰디쓴 질책과 비난을 모두 기억하며 반성하고 살겠습니다."

고려대 47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의 부정 선거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7일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최종운(22) 총학생회장이 대학을 자퇴키로 하면서다. 9일 새벽 최씨는 고려대생들의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부총학생회장과 함께 자퇴를 하게됐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이 학교까지 떠나게 된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달아 두번이나 학생회장을 배출한 ‘고대공감대’ 정파는 3회 연속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문제는 현직 총학생회장이 차기 회장 선거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게 된다는 점이었다. 당시 선거에서 46대 총학생회장 자격으로 중앙선관위원장을 맡았던 황모(24ㆍ정치외교학과)씨는 고대공감대 소속 후보인 최씨 등과 SNS 대화방을 통해 선거 운동 대책을 긴밀히 논의했다. 선관위원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자신이 속한 정파 소속 후보를 도운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선거홍보물은 1만부 이내로 만들어야 한다’는 학생회칙까지 어겨가며 선거 홍보물도 2000부나 추가 인쇄했다.

또 선거 당시 각 선본은 온라인 인터넷 사이트 외에 SNS나 전화로는 선거 운동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고대공감대 선본은 SNS 메신저와 전화를 이용해 투표 독려 운동까지 벌였다. 실제로 당시 선본 중간관리자 23명이 참여한 SNS 대화방에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투표를 독려하고 고대공감대 이야기도 하자"는 말이 오갔던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지난 2일 지난해 선거 당시 고대공감대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신모(24ㆍ교육학과)씨가 48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2주 가량 앞두고 이같은 부정 선거 정황을 폭로하자 고려대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신씨의 내부 고발 직후인 2일 저녁 고려대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참석하는 중앙운영위원회가 긴급 소집됐다. 최씨는 2일 중앙운영위 회의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대부분 시인했다. 최씨는 “선관위원장 등과 선거 전략을 논의하고 메신저를 이용해 투표 독려를 하도록 지시한 건 맞다”면서 “하지만 선관위원장 등이 있던 대화방은 선거 이전부터 있었던 방이고 투표 독려도 조직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기획국장이 개인적으로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해명은 학내 여론의 역풍을 불러왔다. 고파스의 한 네티즌은 "국정원 댓글 사건 시국선언문까지 내놨던 사람들이 이제는 국정원과 판박이같은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비판했다. 결국 지난 4일 재차 열린 중앙운영위에서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됐다.

9일 새벽 탄핵안 총투표 여부를 논의하는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 개최를 불과 12시간 앞두고 최씨가 자퇴 사실을 알리자 학내에선 “자퇴까지 할 사안은 아닌 것 같은데 안타깝다” “탄핵 투표를 앞둔 마당에 너무 무책임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지난 9일 오후 예정대로 열린 전학대회에선 아직 최씨 등의 자퇴 신청이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탄핵안 총투표 안을 가결시켰다. 또 논란의 또다른 당사자였던 황씨 등은 학생회에서 제명처리키로 했다. 총학생회장 탄핵 학생 총투표는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간 진행될 예정이다.

고석승 기자 go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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