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 '막대에서 풍선까지-남성 성기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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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문명사를 집대성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서른일곱 살에 한무제에 의해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宮刑)을 당했다. 그는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 번이나 뒤틀렸으며, 집에 있으면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불안하고 나가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우왕좌왕하는" 치욕의 세월을 보냈다. '그냥 거기 있던 물건'이 한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알속이었다는 얘기다.

미국의 자유기고가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서양사에서 '그 물건', 음경(陰莖)이 시대마다 어떤 크기와 무게로 이해되었는가를 수북한 자료 더미 속에서 걸러냈다. 객관적 사실과 건조체로 일관한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느낌과 달리 선정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생명의 근원이었던 신화 속 남근 이야기로부터 비아그라로 정점을 이룬 현대의 발기 산업까지, 페니스를 해부하는 그의 시선과 손길은 꼼꼼하다. 남성의 '연장'을 엿보는 인류의 시각은 정신적이면서 생리적인 잣대를 왔다갔다 하며 어려운 균형을 애써 잡아왔다는 것이 지은이의 관점이다.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뉜 소제목을 따라 남성 성기를 바라보는 인식의 역사를 훑었다. '악마의 막대'는 중세 마녀 사냥 시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마녀와 악마의 통정설'로부터 시작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및 로마 제국에서 음경이 품었던 상징 체계를 분석하고 있다.

종교 재판관이 '악마의 막대'라 불렀던 음경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권력과 생명력의 원천으로 숭앙받았고, 로마에서 거대한 음경은 힘을 뜻했다.

기독교 예술에서 익명으로 침묵했던 '그것'이 복권된 때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음경을 해부해 수많은 스케치를 남기며 심리학적으로 통찰했지만, 음경이 과학을 만난 뒤에는 '변속 기어 레버'가 되었다.

문학도 '거시기'의 자유를 높이는 데 한몫 했다. 미국의 시인 휘트먼은 '나의 노래'에서 "너 나의 풍요로운 혈액이여! 우윳빛 너의 액은 내 삶에서 짜낸 연회색의 진수!"라고 표현해 '정액의 시인'이란 말을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서구인들을 떨게 만든 흑인들의 대물(大物)과 그로 인한 흑인 수난사다. 흑인의 큰 음경에 대한 공포를 미국 의사 슈펠트는 '흑인, 미국 문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요약했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남근'이란 단어를 오르내리게 만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이 책에서 빠질 리 없다. 지은이는 '시가'라 이름지은 장에서 하루에 20개씩 시가를 태웠던 애연가였던 그가 시가를 자위와 성애의 승화라고 인정했다며 프로이트의 남근 중심주의를 풀어 내린다.

20세기 전반부에 이렇게 정신분석의 도마에 올랐던 남성 성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며 논란과 소란 속에서 '정치의 계절'을 만나 새로운 단련을 받는다. 여권운동가들에게 발기한 음경은 '성문(여성의 상징)을 부수는 기둥'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연장'에 대 전환의 날이 왔다. 1998년 3월 27일은 '완벽한 음경'을 추구하던 의학자들과 제약회사들에 잊을 수 없는 디데이다. 비아그라가 전세계 남성에게 '터지지 않는 풍선'으로 날아갔다는 게 지은이의 표현이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자기들만의 마음'을 지녔던 음경은 더 이상 신비의 피와 살로 살아 있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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