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In&Out 레저] 시간도 멈춘 쪽빛 바다 베트남 중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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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은 질기고 고집스럽다. 아시아 대륙 남쪽 끝자락의 오지, 울창한 열대 밀림과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 그악스러운 베트콩…. 인천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베트남의 이미지는 그렇게 요지부동이었다. 아차 싶었던 건 비행기가 나트랑 깜람공항 상공을 선회할 때쯤. 창문 밖 풍경은 상상과 영 딴판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순백의 백사장, 쭉 뻗은 해안선을 따라 점점이 들어선 고급 리조트…. '아시아의 마지막 숨은 진주' 베트남 중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의외의 놀라움으로 시작됐다.

베트남=글.사진 김한별 기자

바다 그리고 성스러운 산 - 나트랑과 다낭

나트랑(현지 발음 나짱)은 중부 휴양도시 가운데 대표 주자다. 남부의 중심 도시 호치민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 6㎞에 달하는 길고 깨끗한 백사장은 베트남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해양스포츠의 천국이고 근교 20개 섬을 돌아보는 크루즈 투어도 발달해 있다. 곳곳에 늘어선 고급 리조트 대부분은 외국자본 소유다. 프랑스와 일본 관광객들이 특히 많지만 최근엔 우리나라 신혼부부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투숙객 전용 백사장이 딸린 리조트 앞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다 보면 하루해쯤 금방이다. 둥그런 나무배 '뚜옌 뚱'을 띄워놓고 물놀이를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도저도 번거로운 '귀차니스트'라면 야자수 그늘에 매어둔 해먹에 누워 한껏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흔들흔들 몸을 맡기고 책장을 넘기는 호사가 감미롭다.

다낭은 나트랑에서 비행기로 1시간15분쯤 북쪽에 있는 도시다. 호찌민과 하노이의 딱 중간. 베트남 남북과 라오스 등 주변국을 잇는 교통의 요지다. 이 지역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오행산. 투이손(물), 킴손(쇠), 토손(땅), 호아손(불), 모쿠손(나무) 다섯 산의 통칭인데, 음양오행설을 모르는 서양인들은 대리석이 많다고 '마블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관광객은 투이손에 가장 많이 몰린다. 해발 108m 정상에 오르면 나머지 4개 산과 저 멀리 비엔동(동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산허리 곳곳에 자리 잡은 13~17세기 대승불교 사찰도 중국 쪽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미를 자랑한다.

역사의 빛과 그림자 - 호이안과 후에

나트랑과 다낭이 자연 그 자체를 즐기는 곳이라면 호이안과 후에는 베트남 대지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를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호이안은 오행산에서 차로 30분 남짓 남쪽에 있다. 남중국해로 흐르는 투본 강가에 형성된 도시로 15~19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번성했던 곳이다. 왕년에 '잘나가던' 국제 도시답게 시가지에는 중국.일본.베트남의 색채가 고르게 배어있다. 한마디로 유서 깊은 '퓨전 문화도시'. 유적 보호를 위해 차량통행이 제한돼 있다. 아열대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장시간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베트남의 명물 시클로(인력거)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근교 미선엔 2~15세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참파 왕국의 힌두교 유적이 남아있다. 규모만 따지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못지않지만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곳이다.

미선에서 다시 북쪽으로 차를 돌려 해발 600m의 일출 명소 하이반 고개를 넘어가면 '왕의 도시' 후에가 나온다. 중국 지배에서 벗어난 첫 독립 왕조이자 프랑스에 나라를 빼앗기고 사라져간 마지막 왕조인 응우엔 왕조의 수도. 그래서 후에엔 베트남 역사의 빛과 그림자, 영화와 굴욕의 대조적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삼았다는 장대한 왕궁과 전성기 민망 황제의 근엄한 능이 전자라면, 나라가 기운 다음인 뜨득과 카이 딘, 두 황제의 능은 후자에 속한다. 규모가 크고 장식은 더 요란하지만 미적으론 조악하고 경망스럽다는 게 중평이다. 호이안 거리와 미선 유적지, 후에 모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여행정보

베트남 중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일단 남부 하노이나 북부 호찌민으로 입국한 다음 연계 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 가장 무난한 선택은 베트남항공(02-757-8920) 국내선을 이용하는 방법. 남북의 두 도시에서 나트랑.다낭.후에까지 각각 매일 3회 운항한다. 대부분 75인승 프로펠러기이므로 성수기 땐 좌석이 금방 찬다. 한 달 이상 넉넉히 여유를 두고 예약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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