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촌스럽게 부킹은 …맘에 들면 '부비' 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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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어두컴컴한 클럽. 심장을 울리는 비트.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춤을 추는 그녀. 리듬을 타며 그녀의 뒤에 다가가 슬쩍 몸을 스치며 춤을 추는 낯선 남자.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손을 뻗는 여자. 그 손은 남자의 뺨을 향해 날아가지 않는다. 남자의 목에 손을 대고 함께 리듬을 탄다-.

대명천지에 남녀상열지사가 웬 말이냐며 붉으락푸르락할 필요는 없다. 클럽 등지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는 '부비부비' 춤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인터넷의 바다에선 '부비부비'란 노래가 한창 뜨고 있다. 테크노 뮤지션 가재발(35)이 프로듀싱한 프로젝트 그룹 '바나나걸'의 2집 타이틀곡이다.

"나이트 클럽의 부킹이 중매 문화라면 부비부비는 연애 문화입니다. 웨이터를 통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직접 다가가니까요."

부비부비가 모든 클럽에서 성행하는 건 아니다. 힙합 클럽 중 사람이 몰리는 몇몇 곳에서 특히 심하다. 부비부비족 때문에 클럽 매니어들이 설 곳을 잃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가재발은 부비부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쁜 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깨끗합니다. 여자가 눈치를 주면 남자는 떨어져 나가거든요. 예전엔 부킹을 하려면 남자는 번거롭더라도 테이블을 차지하고 양주와 과일을 먹어야 했잖아요. 여자들은 웨이터 손에 이끌려 이 방, 저 방을 전전해야 했고요."

그는 특히 여성의 변화에 주목한다.

"변진섭씨의 노래 '희망사항'에 나오듯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가 1990년대의 여성상이었다면 2000년대에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바나나걸이 이상형 아닐까요."

그렇다면 바나나걸은 어떤 여성일까. '부비부비' 노래와 함께 포털 사이트 다음.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김진태씨의 만화 '바나나걸'의 주인공은 지하철의 성추행범을 끝까지 쫓아가 주먹으로 응징한다. 선임 여직원에게 20명의 커피를 타는 임무를 인계받자 테이크아웃 커피를 배달시킨 뒤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는 당돌한 신입사원이다.

바나나걸은 늘 인터넷과 뮤직비디오로만 떠돌았다. 바나나걸 1집 때는 타이틀곡 '엉덩이'를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오인용'의 작품을 통해 퍼뜨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바나나걸의 실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요즘 우리나라 가수들은 너도나도 꺾어대는데, 제가 우는 목소리를 싫어해요. 깔끔한 목소리를 원하다 보니 바나나걸이란 이름을 걸고 활동할만한 가수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1집에 참여한 보컬만 4~5명. 기성 가수가 아닌 대학생.직장인 등도 포함됐었다. 작업이 진행 중인 2집에서는 3~4명의 바나나걸이 계속 탄생할 예정이다. 주변에서 소개받은 20여 명 중 오디션을 통해 고른 멤버들이다.

그런데 가재발은 왜 바나나걸이란 프로젝트 밴드를 고집할까. 가재발 3집을 발매한 지도 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가재발이란 이름으로는 저만의 음악적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어요. 그걸 건드리지 않고 클럽 음악과 대중 음악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는 음악을 하려다 보니 바나나걸이 탄생했죠. 대중에게 친근하면서도 한발 앞선 음악을 들려 주고, 그 다음에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겁니다. 잘 들어보면 1집 보다는 2집이 한 발짝 앞서 있다는 걸 발견하실 거예요."

테크노라면 '도리도리 춤'이 전부인줄 아는 대중을 지켜보자니 답답했던 가재발. 그는 바나나걸을 통해 클럽에 가지 않아도 테크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쉬운 테크노 음악으로 대중에게 직접 '연애를 거는' 부비부비에 도전하는 셈이다.

이경희 기자

▶ '부비부비'란=보통 여성의 뒤에 가서 남성이 함께 리듬을 타며 추는 춤을 일컫는다. 호흡이 잘 맞으면 함께 춤을 추고, 그렇지 않으면 여성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다른 곳으로 피하거나 눈치를 줘서 남성을 떼어 낸다. 1년여 전부터 홍대.강남의 클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부비부비는 남녀가 딱 붙어 있는 듯 보여 '매미'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음악 채널 m.net의 프로그램 '수퍼 바이브 파티'에서 '도전 부비부비'라는 코너를 만든 뒤 부비부비라는 용어로 굳어졌다.

▶ “성추행범 때려 잡는 만화 주인공 바나나걸처럼 당당한 여성이 좋아요”

▶ 가재발은=테크노(전자 음악의 한 장르) 뮤지션. 본명은 이진원. 2000년 12월 첫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유카텍(Ukatech)'과 계약, 진리(JIN LEE)라는 이름으로 진출했다. 진리의 데뷔곡 'muul'은 유럽 3대 테크노 음반 판매 사이트 중 하나인 '튠 인(www.tuneinn.com)'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테크노 DJ로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 영화 '몽정기' 음악 작업에 참여하고 애니콜 광고 음악 'Sweet Dreams'를 리믹스했다. 펀케익(www.funcake.com).가재발(www.gazaebal.com)에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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