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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개편엔 후한 점수|개각 성패는"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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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당직개편과 내각개편이 20, 21일 이틀에 걸쳐 연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번 당·정 개편을 야당 측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민정당의 당직개편에 대해서는 야당 측도 그런 대로 호평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개각에 대한 평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개편을 민정당 측에서는 장 여인 사건에 대한 문책보다는 시국수습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나 야당 측에서는 그렇게 보질 않습니다. 정작 장 여인 사건의 책임자라 할 나웅배 재무장관은 유임됐고 엉뚱한 부처의 장관이 경질됐거든요. 그래서 임종기 민한당 총무 같은 이는 문책도 아니고 민심수습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몸 던져 수습할 사람>
-이번 개각에서 경제부처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어요. 김준성 부총리나 나웅배 재무장관은 물러날 각오를 하고 있었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보았는데 유임된 반면 고건 농수산이나서서석준 상공장관은 안심(?)하고 있다가 물러났습니다.
특히 서석준 상공은 미국 출장 중에 바뀌었습니다. 경제부처에선 김 부총리와 나 재무가 유임된 것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경기대책을 한번 소신껏 펴보라는 뜻이 아니냐고 해석하고 있어요.
-두사람이 취임한지 4개월밖에 안됐다는 점도 감안 됐겠지요.
-아뭏든 경제팀의 재량권이 상당히 강화될 것으로 모두들 점치고 있습니다. 이제 까진 경 제팀이 제대로 경제정책, 특히 경기정책을 못 펴온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론 경제팀의 책임에다 경제정책을 밀고 나가도록 하는 방향이 될 거라는 예상이지요.
-그러면 경기는 좋아지겠습니까.
-그 점이 가장 걱정입니다. 워낙 경제가 구조적으로 어려운데다 이번 사채파동까지 겹쳤으니 경기가 풀리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정부가 물가안정만을 강조하던 종래의 방향에서 벗어나 경기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으니 옛날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경제는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는 앞으로의 정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실 이번 개각을 문책적 성격으로 보려고 하면 오히려 민심수습차원에서「대폭개각」 이란 말이 주는 효과를 더 고려한 게 아닐까 싶어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전두환 대통령이『몸을 던져 일을 수습하려고 해야지 사표 한장으로 끝난다고 생각 말라』는 말을 거듭거듭 강조했거든요. 부총리나 재무장관의 유임은 이런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죠.
민정당의 이재형 대표위원이 난국타개책을 진언해서 큰 역할을 했지만 결국 전대통령도 마지막 단안을 내릴 때는 혼자서 구상한게 아닌가 보입니다. 노태우 내무장관, 권익현 신임민정당 사무총장의 얘기도 들었다고들 합니다만.
그런 점에서 정치적 방파제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무슨 사건만 생기면 대통령에게 바로 연결되고.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야한다면 정치안정을 위해서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과거식의 중간보스 같은 형태는 그 폐해가 너무 커 인정 않는다는 소신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전판으로서 제도적으로 차하급 책임선이 제대로 기능하는건 바람직하다고 봐야죠.
-일단 인물이 바뀌었으니 내각이나 정당운영의 스타일도 바뀌겠지요.
-유창순 총리가「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부」를 강조했고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도 당내 민주화를 얘기했는데 상당한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당내민주화의 참뜻>
내각의 책임과 자율성도 강조되고 있어요. 이번 장 여인 사건 때 법무부가 유 총리에게 보고한 것은 발표전날인 19일 한번뿐이었어요.
그 전에는 총리도 신문으로나 수사과정을 알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책임문제가 나오면 막상 총리부터 거론되잖습니까. 유 총리는 취임 4개월 여만에 벌써 두번 사표를 냈어요.
-그런 점에서 아까 말한「제도적 방파제」가 제대로 역할 할 수 있으려면 역시 내각의 자율성과 권한이 필요하죠.
-대통령이 수 차례에 걸쳐 책임과 소신을 강조해 왔지만 아직 행정부에는 위의 눈치를 살피는 타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구석도 많아 이번 개각이 그걸 벗어버리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죠.
-민정당에서는 당내 민주화의 초점이 벌써 시작됐어요. 과거 권정달 총장시절 조직과 정책, 그리고 원내대책까지 사무총장에게 일원화 시켰던 체제를 분리시키는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분헌을 고쳐 사무총장산하에 들어가 있는 정책조정실 등 정책기구를 정책위의장 산하로 되돌릴 작정입니다. 권 신임총장도 원내문제는 총무에게 일임되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사무국·정책위·총무의 3권 분립 체제가 이뤄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를 통괄·조정할 위치에 있는 이재형 대표위원의 역할이 강화된다는 결론도 나타나는군요.
-정부쪽에서도 민정당 당직개편을 그런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과거에는 젊은 실력자에게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이 없지 않았나 봐요. 자격지심이라고 할까요.
아뭏든 권익현 총장이 과거보다 한세대 위로서 대통령과는 육사동기이며 노태우 내무장관과도 가까운 사이라 당·정 협조가 보다 원활할 걸로 기대하고 있어요.

<야당선 먼저 당한 셈>
-후속인사도 일단 폭이 넓다고 봐야겠지요.
-합참의장과 검찰총장자리가 비었고 외무차관·국방차관·사회정화위원장·강원도지사·평통 사무차장 등 차관급 5명의 자리가 비어 군부와 행정부에 어차피 한차례 인사바람은 불게 되었어요.
-대통령 특사로 중남미를 순방중인 이범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귀국예정을 4일 앞당겨 22일 귀국한 것도 주목됩니다.
-이번 정계개편이 국회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야당쪽에서는 이종찬 민정당 총무의 유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임종기 민한당 총무나 이동진 국민당 총무는 지금까지 이 총무가 국회운영 위원장으로 국회를 이끌어온 방식, 그의 국회관 등으로 미뤄볼 때 그의 역할이 결코 정치를 후퇴시키지는 않을걸로 기대를 걸지요.
-정치를 알고 대야관계가 부드러운 편인 이재형-이종찬 라인에서 민정당의 원내 전략이 짜여진다면 국회가 전 보다는 활성화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아요.
-그럼 목전에 다가온 임시국회는 어떻게 처리될까요.
-야권에서는 어차피 임시국회는 열린다고 보고 일단 국회를 공동으로 소집한 후 국정조사권 문제는 그 운영과정에서 제기해 나간다는 작전입니다.
-이종찬 총무는 정부가 정치적 결단을 내렸으니 국회도 어제는 마무리짓는 쪽으로 가야지 않겠느냐 하더군요. 그래서「짧게 굵게」열겠다는 생각인데 국정조사권은 발동하지 않고3, 4일 정도의 단기간에 본 회의와 관련상임위를 연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정조사권발동문제로 좀 시끄럽지 않을까요.
-민정당도 그 점에서 고심하는 눈치입니다. 이 총무는 여야 영수회담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각당 대표회담 또는 민정당의 당직개편을 계기로 한 3당3역 회담 등을 통해 정치적 타결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요.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수습하는데 동의했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야당 측이 선뜻 응할는지 모르겠군요.
-결국 검찰수사결과를 어떻게 보느냐는 건데 숫자의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야당 측의 해석이지요.
야당 측은 검찰이 장 여인 사건의 핵심인 배후규명과 자금행방 수사에는 한계를 드려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정당 의원들은 일단 당의 결백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 여인 사건에 대해서는 야당 측은 할말이 없을것 같아요. 걸핏하면 주장하던 내각 총 사퇴론 한번 제대로 제기 못한 채 정부여당에 당한 꼴이 됐지 않습니까.
-당초 사건이 터졌을때 고작 국회재무위에 금융부조리 진상규명 소위를 설치하자는 주장이었으니까 문제파악의 한계를 드러낸 셈이죠. 정치적 해결책을 논의하는 체 했다가 그것마저 쑥 들어가 버렸고….

<국회과열 가능성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미흡했다고 질책 받아 마땅합니다.
좀 더 대국적인 입장에 서서 문제에 접근했더라면 정부-여당에 끌려 다니는 한심한 꼴은 보이지 않았겠지요.
-아뭏든 국회가 열리면 야당의 이 같은 내부적 갈등이 그대로 외부로 표출될 것인데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비화해 나갈지 예측 불허입니다. 특히 지난 국회에서 수위를 올려놓은 한영수 의원 발언의 선례에 이어 제2, 제3의 타자가 나타나면 자칫 국회가 과열될 가능성도 있지요. 그 점이 이 민정당 총무의 고민일 뿐 아니라 바로 임종기 민한당 총무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정부-여당이 이번 개편을 단행함에 있어 장기적인 정국전망을 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당면대책도 마련돼 있다고 봐야겠죠.
「안정보위」쪽이 강조되면 대야전략도 강경 쪽으로 기울겠지요. 따라서 이번 국회는 정부-여당의 정국안정책을 판독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정리=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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