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쇄신 위한 획기적 단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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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철희 장영자씨 부부의 어음사기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때를 같이해서 전두환 대통령은 20일하오 민정당의 당직을 전격적으로 개편한테 이어 21일에는 각료11명이 갈린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전대통령의 이러한 조치는 세칭 장 여인 사건과 그에 앞서 일어난 의령참사 등 잇단 충격적이고 엄청난 사건으로 흔들리고 있는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한 단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개각의 폭이 이처럼 커지리라는 전망은 창당의 핵심인물이었던 권정달 사무총장을 퇴진시킨 민정당 개편으로 미루어 짐작되어온 일이다.
내각과 집권당에 대한 전례 없는 개편은 최근 잇단 몇 가지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장 여인 사건이 국민에게 준 총격은 너무도 심각하고 엄청난 것이었다.
금액의 어마어마함이나 금융가룰 주무른 그 수법의 담대함에 국민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이런 사건이 유야 무야 된다든지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는다면 새 정부의 최대 국정지표인 정의사회의 구현이란 공약은 설득력 없는 한낱 구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대통령의 당직 및 내각개편은 사건의 이 같은 중대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내린 결단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인정교체란 의미만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모든 일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결의의 반영이라고 평가된다.
5·20 당직개편으로 민정당의 운영스타일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신임 권익현 총장은『중지를 모아 민심에 순응하는 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국회운영은 원내총무에게 일임한다고도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인들의 몸가짐이나 국회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적 요소들을 많이 제거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든지, 이권이란 이권에는 모조리 개입해서 심지어 치부의 수단으로 삼기까지 한 정치인의 비리는 제거되어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리추방이나 부정요소 제거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국회활동이 부진하다든지 위축되는 일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회는 다원화 한 계층간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일을 그 최대의 기능으로 한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으로서 이 같은 기능을 제대로 못해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것은 비단 국회나 정당의 비극일 뿐 아니라 국정의 경색으로 정부의 업무수행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조차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검찰은 민정당의 전 사무총장 권씨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으며, 장 여인이 사취한 돈이 정치 자금화 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무관함이 드러났음에도 문제된 기업간부와의 관련설로 구설수에 올랐던 권 총장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은 공직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음미해야 할 것이다.
장 여인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이모 씨의 알선수재 혐의 외에 배후영향력행사에 대한 수사는 계속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모두 풀린 것은 물론 아니다.
이-장씨 부부가 처음 20억원 이란 자금을 단시일 안에 만들 수 있었던 과정이라든지, 공영토건이 관례를 깨고 실 채무액의 7·5배에 달하는 어음을 써준 처사는 여전히 해명이 안되고 있으며, 특히 자금의 사용처를 명쾌하게 가려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민정당의 권 총장 관련설만 해도 그를 소환해서 해명을 듣는 것이 진상규명을 위해서 뿐 아니라 권 의원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수습단계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새삼 우리자신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한가닥 회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과 비리는 근본적으로는 이사회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논리에서다.
함께 살며, 함께 이루어온 공동사회에서 그런 비리와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그것을 예방하고 견제할 제도와 윤리관행이 온전하지 못 하든가 미흡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무사한 제도적 장치라든가,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시민의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민주시민사회를 지탱하며 유지할 수 있는 시민 개개인의 권리·의무관념이 철저하지 못한 것도 문제이거니와 아직도 봉사와 친절로 일관한 공?? 의식대신 군림하고 위압하려는 공직자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문제가 되고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식개혁 운동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부정적 사태들로 해서 그 열망은 일단 무색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의식개혁의 참뜻은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민주시민 사회의 형성과 유지에 역항하는 구시대적 가치의식이나 윤리관은 지금 조화롭게 극복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올바르고 아름답게 사는 심성을 키우는 대신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광분한다든가 「사돈의 팔촌」이라도 권력을 잡으면 거기에 빌붙어 부당한 영달을 꾀하는 폐풍은 철저히 제거되어야겠다.
뿐더러 공직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공직을 권력으로 생각해서도 안되겠다. 시민으로부터 책임과 의무를 위임받아 봉사하고 있다는 뚜렷한 자세가 확립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직이 현달이 아닐 뿐 아니라 자신과 족벌의 이권을 위한 도구일수도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런 공직의식이 투철할 때 공직자는 존경을 받고 또 사회의 공공의식도 살수 있다.
검찰의 표현처럼 장 여인 사건은 『건국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이었다. 그 엄청난 비리에 국민들은 할말을 잃었고 살맛을 잃었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길인가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회의에서 우리는 심기일전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장 여인처럼 사는 방법이 정상일 수는 없으며 그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집권당의 대폭개편이 민심을 수습하는 한 방법일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흐트러진 민심이 모두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민심의 소재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서 거기에 따라 국정을 펴는 것이 앞으로 정치인들이 해야할 일이다.
즉 국민을 지도해서 끌어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청되는 반면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려 그것을 국정에 반영하는 겸허한 자세야말로 장 여인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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