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맞서 싸우는 춘향이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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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춘향전은 셰익스피어 작품과 비슷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뒤집을 수 있고 실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열린 재료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71·사진)의 말이다. “어떻게 만들어도 결국엔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춘향전에서 그 진리가 판소리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서반이 연출하는 창극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이 2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5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반은 “이번 작품을 통해 ‘창극’의 스타일이 구식이 아니고, 오늘날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1968년 연출가로 데뷔한 이래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혁신과 파격을 주무기로 활동했다. 그가 재해석한 춘향전도 파격적이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이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춘향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서반은 “춘향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영웅”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작품의 배경도 현대로 바꿨다.

몽룡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로, 춘향은 가난한 집 딸로 등장한다. 형편이 어려운 춘향 집에 도우미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향단이란 인물은 아예 빠졌다. 호색한인 신임 시장 변학도가 춘향을 명예훼손으로 감옥에 가두고, 검사가 된 몽룡은 부패 정치인을 내사하기 위해 남원으로 내려온다.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는 21세기 신세대 스타일로 통통 튄다. 하지만 음악은 판소리의 원형을 그대로 지켰다. 서반은 “국립창극단 배우들은 목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오페라 가수처럼 특유의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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