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반의 보토 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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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사채파동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뒤로 밀리고 있다.
기업의 자금순환이 제대로 안 되고 있고 그래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경영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가 발표한 1천억 원의 중소기업 긴급지원자금방출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실정을 감안, 관계부처가 참여한 실무작업반을 편성해 경기대책을 세우려 하고 있다.
경기대책의 줄거리로는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사채를 양성화시키며 필요하다면 통화계획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푼다는 것 등 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일환으로 증시의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3백억 원의 특별담보금융을 지원함으로써 증시는 일단 안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경기대책은 사채파동으로 인해 가속화된 시중자금난을 우선 염두에 두고 편성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채파동이 경기부진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금난이 사채파동을 계기로 일시에 총체적으로 표면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심리를 부채질하여 자금회전경로를 경색 시키고 있다.
따라서 당면한 경기침체나 심리적인 위축을 해소시키려면 가장 손쉽게 떠오르는 것이 자금의 방출이다.
재정지출의 확대나 통화계획의 잠정적인 기능정지가 모두 자금방출을 뜻하고 있다.
재정지출의 증가는 세수감소를 생각할 때 결국 통화증발을 가져올 것이며 통화계획의 테두리를 벗어난 여신증가도 역시 통화증가를 불러 일으켜 안정정책과 충돌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재정지출을 늘린다는 것은 정부공사의 조기발주가 현저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 비추어 그 파급효과가 의문이다.
이렇게 보면 현실적인 응급처방과 그동안 일관해서 추구해 온 경제정책과의 상충을 조화시킬 묘안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 달 들어 수출신용장내도 액이 다시 늘어나고 계절상품의 수요가 움직이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일부 내구재의 출마도 증가세로 바뀌고 있다.
3년에 걸친 경기침체의 그늘이 너무 짙었고 그 위에 이번 사채파동이 타격을 가하긴 했으나 견실한 수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통화공급은 기업의 부도발생을 막아 주는 범위 안에서 신중히 운용될 필요가 있다.
경기침체의 근본원인이 있는 자금난에 모조리 응한다면 통화계획이고 여신관리고 재정긴축이고 간에 파탄이 올 수밖에 없다.
지금은 냉정히 경제의 흐름을 분석하고 긴요한 대응책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기업의 불가피한 소요자금을 내주되 지나치게 번잡해지고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실제적인 대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통화증발을 초래하지 않는 경기대책, 즉 물품세 부가세 특소세 등 전반적인 조세체계의 재조정을 통해 과감한 세율인하를 단행해야 한다.
세율인하로 가격인하를 유도하여 수요를 북돋는다면 재무당국에서 우려하는 세수감소를 양적으로 보전할 수 있다.
조세감면 책만이 남아 있는 경기회복수단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는 사채파동으로 움츠러든 경제활동을 자극하는데 유효할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발생소지도 없애고 단기적인 통화증발이 하반기의 통화흡수로 이어지는 고통도 예방할 수 있는 최 량의 경기대책이다.
이번 경제적인 대 사건은 하반기 경기회복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지반을 무너뜨릴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서도 수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기업의 노력이나,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의 자세는 여전하다.
정부는 건전한 경제주체들이 안도감을 지니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세정책 수정 등 침하된 경제지반의 보토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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