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 같은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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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장 여인 파동을 취재해 온 기자는 이 광풍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배경으로 벌어진 대 전주·대기업·은행들의 도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 여인이 퇴직 고관 이철희씨를 남편으로 두었고 이규광씨가 형부라는 배경만으로 대기업들을 속일 수 있고, 은행을 농락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가기 때문이다.
사건에 휘말린 기업 중에는 우리나라 기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뿌리깊은 기업도 있고, 재계 중진으로 활약해 온 기업인도 있다.
그런 기업과 기업인이, 그리고 은행장이「장 여인의 인척」이라는 배경만으로 도산과 파멸을 각오하고 상식과 관례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에 끌려갔다 기에는 너무도 우스꽝스런 일이다. 희극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심각한 일이다.
다행히 고위층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국민에게 밝히 라』고 했고, 검찰도『수사진을 총동원, 검은 손을 근절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재무장관도『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봉책이 아닌 정면대결 방식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로운 새 시대에 사는 국민들은『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이번 사건의 진상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해야겠다.
풀리지 않는 의문중의 하나는 장씨 부부가 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는가 하는 동기, 그리고 언제쯤 부도가 나고 사건화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 부부가 태연히 거리를 활보했느냐 하는 점이다.
흉년이 들어도 고루 못 먹으면 불만이 덜 하지만, 풍년이 들어도 빈부의 차가 크면 불만의 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에 국민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주는 사건이 터졌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겠다.
빨리 진상이 밝혀지고 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의 안정이 이뤄져야겠다.

<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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