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수사관 백여 명…단일사건 최대 규모 사채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번 사건을 다룬 검찰의 수사방법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초진이 늦었다』고 말한다. 이는 화재발생 때 소방차의 출동에 비유한 말이다.
뒤늦게 검찰은 대검검찰연구관·서울지검 특수 부·남부지청·대검 3, 4과를 투입했지만 처음부터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성으로 보아 진작에 파트별 수사 팀을 구성했어야 했다는 자체반성도 없지 않다. 이 엄청난 사건을 단 l개 수사 팀(중앙수사부 제2과)에 전담시켰다는 것은 큰 오판이었다.
현재 투입된 수사진은 이종남 대검중앙수사 부장을 총괄팀장으로 부장검사 3명 등 검사 15명, 전담수사관 1백여 명 등 5·16후 단일사건으로 최대규모다.
검찰이 밝히고 있는 수사의 초점은 이들의 배후세력과 은닉재산의 규모. 이밖에 ▲대출경위 ▲외화도피 ▲최초의 재산축적과정 ▲관련 어음규모 ▲사취수법 ▲탈세액 등 분야별로 전담반 형식으로 수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소환된 사람은 줄잡아 2백여 명. 이 중에는 임재수 전 조흥 은행장, 공덕종 전 상업은행장을 비롯해 조흥은행의 신영철 전무 등 두 은행간부 20여명과 일신제강의 주창균 회장, 태양금속 한은영 사장 등 관련기업 경영진 10여명, 사채업자 소씨의 전 남편 2명과 친정가족 등 이 포함되어 있다.
진전이 없이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2일 하오부터였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던 부인 장씨는 수사관이 보는 앞에서 남편 이씨에게 『이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자. 얼마간 징역을 살지 모르지만 출옥 후 당신의 연금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더라는 것.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압수된 장부는 장씨의 메모가 적힌 낡은 달력 l개와 돈 부대 1개 분량의 은행서류, 양팔에 끼고 다닐 정도의 기업체 경리장부 등 이 고작이었다.
요즘 검찰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몸조심」「입 조심」「귀 조심」등「3대 조심」을 안명보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느낌.
저질연탄사건 이후 신경질적으로 보안유지에 주력해 온 검찰은 사상 유례없는 메거톤 급 사건이 터지자 수사실무진은 물론 그 언저리의 인사들까지도 이·장 부부사건에 관해서는 철저히 함구.
3대 조심이란 업무에 관련된 사람 이외에는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피하는 게「몸조심」, 알든 모르든 간에 사건 관계는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앓는 게「입 조심」, 궁금하고 답답해도 구태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귀 조심」이라는 해석들.
그러나 한편에선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면 조직이 경직되어 중의가 모아지지 않고 검찰의 진의가 오도될 우려가 없지도 않다고 걱정.
이·장 부부 거액 어음사기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검찰이 보름이상 철야작업을 하고 있는 데도 그동안「강 건너 불 보기」로 뒷짐을 지고 있던 법원이 공영토건의 회사정리신청이 접수되자 크게 긴장.
더구나 회사정리 신청은 성질상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완전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데도 접수 나흘만인 11일 신문에 보도되자 서울민사지법 간부들은 이를 부인하느라 한때 진땀.
정기승 민사법원장은 끝까지『나는 모르는 일로 수석부장판사의 전결사항』이라고 미루었고, 안우만 수석부장은『접수가 안됐다』고 시종 부인하면서『회사정리신청사건은 결정이 날 때까지 보도를 않는 것이 정도』라며 언론중재위원장답게 설명.
법원실무자들은 하급직원의 실수로 회사정리신청사건의 접수가 확인되고 곧바로 보도되자『외부에는 법원에서 확인했다고 하지 말고 회사에서 확인했다』고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국제관광공사는 공사소유인 경주 조선호텔 등을 인수할 예정으로 있는 라이프주택이 장영자 여인에게 4백25억 원의 견질 어음을 발행, 곤란한 처지에 빠지자 예정대로 호텔을 인수할 것인지를 확인하느라 부산.
라이프주택은 관광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경주조선호텔 주식지분을 53억 원에, 경주보문단지골프장 주식을 73억 원, 해운대비치호텔 주식을 3억4천만원에 인수키로 하고 지난달 24일 가계약까지 체결한 상태.
관광공사 관계자는 라이프주택이 매입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불했기 때문에 어려운 처지인대 호텔 등을 예정대로 인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일단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노동부는 이·장 부부의 거액어음사기사건에 휘말린 회사가 6개 사에 이르자 이들 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종업원들의 실업사태를 종업원들 못지 않게 우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직후 피해회사 종업원들의 체임현황조사에 나선 결과 어수선한 가운데도 종업원들이 대부분 정상출근, 동요 없이 근무하는 것을 보고 일단은 마음을 놓았다고-.
이 관계자는 게다가 일부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회사에 퇴직금지급을 요구하는 예도 있었지만 많은 동료들로부터 핀잔만 받았다며『회사가 어려울수록 노사협조가 잘되는 법』이라고 큰소리.
서울시는 거액어음사기사건의 화가 지하철공사에까지 미치지 않을까「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중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안도의 한숨.
서울시의 이 같은 우려는 어음사기사건의 회오리에 휘말린 회사 중 지하철 2,3,4호선 공사를 맡고 있는 공영·삼익·라이프 등 3개 건설회사가 과거 서울시의 토목공사를 맡았다가 도산, 큰 피해만 안겨 준 제세 산업과 신진기업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
그러나 지하철공사 참여회사에 대해 2개의 다른 회사가 각각 보증을 서도록 안전판을 마련해 둔 데다 지난해 2억5천만원과 7억5천 만원 짜리 토목공사를 맡았던 공영토건이 부도직전에 있다는 정보를 이미 지난 3월 입수, 공사비 지불을 미루어 와 서울시의 피해는 걱정할 것이 못된다고 결론. <고정웅·권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