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진|생산과정 안 거치고 돈을 굴려 치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조동필<고려대 경제대학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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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전이면 가사 귀』라는 말이 있다. 돈만 가지면 귀신도 부려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돈의 위력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일어난 세칭『장 여인 사건』은 돈의 위력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해 준 셈이 된다.
첫째는 이 사람들의 결혼식에 은행장을 비롯해서 소위 명사라는 위인들이 다수 참석을 하였는가 하면 또 전화로 은행장을 상대로 여러 가지 지시를 하였다니 대단한 일이다.
더욱이 금융기관도 아닌데 일개여인이『어음을 2천6백24억 원이나 취득』을 하였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더 이상하게 생각되는 일은 실제의 부채 액보다도 어음발행 액이 두 배 세 배나 되니 어떻게 된 사연인지 잘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알 수가 없는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신문에 보도된 대로 살펴보면『굴린 돈 1천4백76억 원이라는 돈이 어디에 갔으며』또 어느 토목회사는『왜 꾼 돈의 10배나 되는 어음을 줬는지』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또 그런가 하면 본인들은『4년간에 20억 원에서 5백억 원의 축적』을 하였다니 그 수단과 방법이 궁금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던 어떤 아나운서는『금융쇼크가 아니라 금융지진』이라고 말을 하였다.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안개 속에 싸여져』 있는 것 같다.
돈이 생산을 매개로 해서 증식이 될 때에는 일반적으로 바람직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한나라에 있어서 재화가 생산되고 또 고용도 창출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가가치의 생산에 의해서 그 국민들에게 소득의 증대도 가져오고 또 그 국민들에게 일터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바람직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생산과정을 거치지 않고 『돈을 돈으로써 굴려』 이익을 추구하고 부의 축적을 시도하였을 때에는 사회적으로 문제만 남겨 놓게 마련이다. 고리대금은 대체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그러한 돈들은 선의의 기업가나 또는 성실한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성격의 돈이나 또는 그렇게 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지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병리적인 현상은 한국경제의 심층부에 자리잡은 병 소에서 연유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무리한 성장을 추구해 왔고 따라서 기업도 무리한 과욕을 내 왔던 것이다. 자기자본도 없이 기업을 일으키니 부채비율이 높고 기업의 재무구조는 엉망이 안 될 수가 없는 일이다. 상장기업체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이 15%이하라니 할 말이 없다.
부채비율은 평균 5백%가 넘는 것이다. 큰 기업일수록 부채비율이 높다. 자기자본비율이 4.5%되는 기업도 있다. 그리고 부채비율이 5천%를 넘는 기업도 있으니 더욱 할말이 없다. 무슨 수로 금융비용을 물고 기업을 운영할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그 나라 기업들의 평균 이윤 율이 그 나라의 이자율을 좌우한다고 알고 있다. 비싼 사채를 쓰고 그 높은 이자를 물고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것인가.
오랜 인플레이션 경제 밑에 있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인플레 앙진 율이 높은 때 같으면 인플레이션이 빚도 갚아 주고 또 보물경제에 의해서 가치보전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플레이션은 다수의 국민들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그대로 방임해 둘 수도 없고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의「포드」대통령이 얼마나 고민이 컸으면『나는 인플레이션을 공공의 적 제1호』로 지적한다고 하였겠는가.
인플레이션 경제 밑에서는 기업가나 국민들이「건달꾼」이 되기 쉬운 것이다. 인플레이션 헤지(방위 책)를 쌓기 위해서 허둥대기 마련이다. 그것도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이나 인플레이션의 희생을 전가하기 위해서 야단이지 아무 것도 없는 근로소득에 의해서 사는 서민들은 인플레이션의 희생을 전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저 희생을 모두다 뒤집어쓰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또 그 인플레이션이「하이퍼 단계」에 이르면 사회적으로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는 줄 안다. 이 점을 관계인사들은 잘 알아야 한다.
『4년간에 20억 원에서 5백억 원으로 축적』하였다는 것은 그분들의『비상한 술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인플레이션의 혜택도 받았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수혜자 군은 소수의 국민이고 인플레이션 희생자 군은 다수의 국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1922년에 라히시스 마르크가 폭락하였을 때, 말하자면 1차대전후 독일이 악성인플레이션에 휘말렸을 때「바게만」교수는『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악성화 되면 경제 내적인 면에서만 문제를 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외적인 면에서도 그 국민의 정신을 해이시키고 또 그 국민의 도덕률을 모두 다 파괴시킨다』고 말하였다.
오늘의『장 여인 사건』은 금융질서의 난맥상을 말해 주는 것도 되지만 또 한편에 있어서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부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소위 이번「금융지진」의 강도가 몇 도나 되는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것이 다를 줄 생각한다. 어쨌든 불행한 일이니 빨리 수습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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