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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테러 근절 위한 새로운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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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7일 런던 폭탄테러는 무고한 생명들을 담보로 행한 비열한 행위며 '생명 존중'이란 인류문명 최고의 가치에 대한 유린이었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과 이념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우선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은 전 세계 시민사회의 일치된 목소리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알카에다 유럽 지하드 조직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런던을 목표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도 생업활동 중인 시민들을 대량 살상하는 테러리즘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런던 테러는 G8 정상회담과 2012년 올림픽 유치 축제 시기에 감행돼 시기의 절묘성을 보여준다. 블레어 정부의 정치적 곤경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전 경고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의 대량피해를 노린 야만적인 테러행위가 치밀한 계산 속에 지하드식 형태로 세계적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상은 9.11 이후 진행된 반 테러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재고와 보다 근본적인 전 지구적 차원의 대응방안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9.11 이후 테러 방지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와 정보 공유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지하드식 테러리즘은 공격을 지시하는 중앙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분산된 점조직 형태로 변모하고 있으며 서방세계의 첨단 정보망을 무력화할 만큼 지능화돼 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느슨한 국가 간 협조체제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으며 보다 강력한 '범지구적 대 테러 대책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테러리즘은 일부 국가의 주도가 아닌 오로지 국제사회의 응집된 커뮤니티 차원에서만 효과적으로 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권한과 실행적 수단이 국제기구에 부여돼야 한다.

현재 이러한 반인륜적 테러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에 가장 알맞은 조직으로 유엔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유엔은 테러리즘과 전쟁은 전 인류의 공통된 문제라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법의 지배를 강화하고 국가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 유엔을 정점으로 유럽연합(EU)과 상하이 협력기구 등 지역 기구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단일하고 긴밀한 정보 공유와 대응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인 테러 근절책은 중동정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일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직후 테러의 원인을 미국이 향유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아랍권의 미움 때문이라 해석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미 국방부 과학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의 94%가 미국의 대 중동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으나 자유와 민주주의 등 미국적 가치와 문명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더욱이 현재 중동에 부는 거센 민주화 바람은 이를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서방의 대 중동 안정 유지 정책은 부패한 독재정부의 양산과 빈부격차 등을 가져왔으며 지하드식 테러리즘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아랍권과 테러리스트를 분리시킬 수 있는 새로운 중동정책이 모색돼야 한다. 인간 생명을 담보한 잔인한 테러리즘이 서방을 향한 아랍권의 성전으로 더 이상 호도되지 않게 하는 길은 이라크 문제를 포함한 중동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다.

박상남 한국외대 외국학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