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전이냐…철수냐 기로에 선 영국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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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장두성 특파원】한 주 동안의 정적을 깨고 9일 재개된 영국군의 포클랜드 함포 사격은 적어도 당장은 상륙 작전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이 런던의 관측이다.
「노트」국방상은 함포 사격보도가 있은 직후 TV회견에서 상륙 작전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24시간 최후통첩을 아르헨티나에 보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지만 협상이 결렬되면 포클랜드를 군사적 방법으로 탈환할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핌」외상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전투를 현 상태 이상으로 확대시킬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발언을 종합해 보면 영국은 아르헨티나가 유엔사무총장이 중재 안을 정식으로 거부하는 것을 기다려 증원 군이 남대서양해역에 도착하는 3∼4일 후에 부분 상륙 작전을 포함한 공격을 재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노트」국방상은 영국이 전투해역을 아르헨티나해안 12마일까지로 확대시킨 조치에 대해 이는 증원 군을 실은 병력수송선과 새 함정들이 기동함대주력과 합세하는 과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적 외에도 전투해역을 넓힘으로써 기동함대의 방어영역을 확대시켜 셰필드 호의 피격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는 목적과 동시에 직접적인 군사행위를 하지 않고도 아르헨티나에 대한 군사압력을 한 단계 높이는 2중 효과를 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설에는 이 조치가 본토의 공군기지폭격을 대신하는 차선의 조치라고 보기도 한다. 이 설에 따르면 본토폭격은 외교적으로 많은 반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영국전투기에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국제법 전문가들 중에는 본토폭격을 하려면 선전포고를 해야 되는데 영국정부는 이를 피하려 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희생을 무릅쓰고 상륙 작전을 강행해도 좋다는 국민들의 여론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런던의 분위기는 협상이 비관적이며 결전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2∼3일 후 상륙 설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 유엔사무총장의 중재노력이 가질 시간여유가 극히 짧다는 절박감을 더하고 있다.
런던의 선데이 텔리그래프 지는 지난 1주 동안 포클랜드사태를 둘러싸고 전개된 미국·유럽 및 분쟁당사자들의 외교적 움직임을 놓고 『벼랑 위를 걸어가던 몽유병환자가 갑자기 잠을 깬 상태』에 비유했다.
영국의 반응을 오판하고 포클랜드를 강점한 아르헨티나, 순간적 흥분 속에서 작전계획의 앞뒤를 자세히 계산치도 않고 시위용으로 함대를 파견한 영국, 영국의 그런 행동이 열전까지는 확대되지 않으리라는 계산에서 경제봉쇄조치를 해준 EEC국가들, 그리고 세계전략과 미주전략을 위해 필요한 두 맹 방을 다같이 비호하려고 협상을 중재해 온 미국-이 모든 나라들에 있어서 이달 초에 있었던 첫 교전의 결과는 그 이전에 취해 왔던 태도의 바탕이 되었던 안이한 낙관론을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주변국가들의 태도변화는 영국이 앞으로 취할 수 있는 군사작전에 중요한 제약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 1주일 동안의 외교활동을 통해서 영국은 두 가지 중요한 양보를 했다. 하나는 영국이 포클랜드군도의 통치권을 원상 회복해야 된다는 협상의 전제조건을 조용히 후퇴시켜 유엔신탁통치를 포함한 잠정적 통치권의 포기를 받아들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의 의사가 이 섬의 주권결정에 절대적 발언권을 가져야 된다는 조건을 수정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양보를 아르헨티나가 받아들이든 않든 간에 이것은 1주일동안 열심히 외교적 타결을 모색하려 했다는 영국 측의 성의를 과시함으로써 앞으로 군사작전을 재개할 경우 동맹국으로부터 받을 반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하나의 외교적 준비작업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이 현재 가장 경계하는 것은 아르헨티나가 협상을 수락할 듯 말 듯 하면서 고의로 지연시켜 영국군이 공격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상기지 없이 남극 해의 풍랑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영국상륙군의 사기와 전투력이 저하되기 전에 공격을 하든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지 사령관의 압력이 조기 상륙 전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래서 한 평론가는 이번 분쟁에서「외교시간」은 길지만「군사시간」은 짧다고 표현했다.
영국 쪽에서는 아르헨티나 군부가 의견통일이 되어 있지 않아서 3강자 중 하나가 중재 안을 수락하면 다른 한 쪽이 거부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구난방격의 반응을 보여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협상으로 타결될 전망이 흐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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