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입시는 대학의 자율권 영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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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논술고사의 비중을 높이고 통합교과형 논술을 실시하겠다는 입시안에 대해 당정은 이것이 이른바 '3불(不) 정책' 중 하나인 본고사 금지에 배치되므로 규제하겠다고 나서 논란이다. 아직 서울대의 입학전형 방침도 '기본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연구 중인 상태에서, 이번 당정의 반응은 앞으로의 교육정책에 대해 지금까지 그래왔듯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교육부는 먼저 '3불 정책'에 반하는 본고사란 무엇인지를 뚜렷이 정의하고, 허용될 수 있는 논술고사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의 자율에도 한계가 있으며 입학전형은 그 영역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의 선발과 전형은 대학의 학사에 관한 자주결정권으로, 분명히 대학의 자율 영역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서울대의 1994학년도 신입생 선발 시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확인된 예가 있다. 대학이 어떠한 학문을 연구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히 그 학문을 연구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스스로 결정함을 포함한다.

서울대는 국가 기관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대학으로서 학문의 자유를 누리는 기본권의 주체다. 이를 부정한다면 서울대는 더 이상 학문연구 기관이 아니다. 어떻게 국립대인 서울대와 국가의 공무원인 서울대 교원들이 국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 있느냐는 일각의 반응은 헌법재판소와 어딘지 '코드'가 안 맞는 노 대통령의 위 발언보다도 더 위험하다. 아무리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학이 무조건적인 자유를 누려야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목적은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 학벌주의 타파이며, 이것이 정당하고도 절실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3불 정책'으로 그 목적을 다소나마 달성할 수 있었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이 모든 논쟁이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를 검증하는 과학적 분석 없이는 국가적 자원 낭비일 뿐이다.

일부에서 통합교과형 논술은 일반적인 공교육에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특수목적고 출신들 혹은 사교육비를 담당할 수 있는 강남의 일부 계층만이 특혜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공교육의 정상화 가능성을 애초에 포기하는 주장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통합교과형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서 이를 소화할 수 없으므로 대학에서도 채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공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공교육의 답습에 불과하다.

대학은 위의 정당하고도 절실한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지역 균형선발 전형'을 통해 이 부분에서 큰 공헌을 했고, 이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입학전형 기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된 통합교과형 논술은 여러 대학에서 적절한 학생선발을 위해 이미 연구.검토하고 있던 방식 중 하나다. 수능의 변별력 상실과 내신의 불합리성 하에서 이것마저도 못하도록 '초동 진압'한다면, 대학교 합격은 더 이상 실력이 아니라 운이 결정하게 된다.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지 않을 바에야, 대학과 중.고등학교와 학생 모두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3불 정책'은 경쟁을 없애는 데에만 주력해 왔다. 그 결과 대학 신입생들이 원서 교재를 읽지 못하고 기초적인 미적분도 할 수 없는 등 심각한 학력 저하 현상을 필자는 강의실에서 절감하고 있다. 국가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김성인 고려대 교수.전 교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