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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전 4관왕 박태환, 슬픈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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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태환

박태환(25·인천광역시청)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 안팎에서 늘 밝게 웃었다. 인천대표 수영 선수를 넘어 ‘전국체전의 얼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지쳐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선수이면서 누구보다 프로답게 행동하려는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

 제주도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박태환은 수영 남자 일반부 4관왕에 올랐다. 지난 달 30일 계영 800m를 시작으로 31일 자유형 200m, 이달 1일 자유형 400m와 계영400m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마지막날인 3일 단체 종목인 혼계영 400m에서 10위에 그쳤지만 인천팀의 마지막 주자로 혼신을 다하는 역영을 해 박수를 받았다.

 국내 무대 1인자답게 4개의 금메달을 수확했으나 기록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출전 종목마다 한국기록에 한참 못 미쳤다. 박태환이 4관왕에 오르고도 세계신기록을 두 개 세운 양궁 3관왕 김우진(22·청주시청)에게 대회 MVP를 내준 이유다. 그는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3분47초40을 찍었다. 한 달 전 인천아시안게임 기록(3분48초33)과 견줘 1초 가량 빠르지만, 자신이 보유한 한국최고기록(3분41초53)에 5초87이나 늦었다.

 아시안게임 이후 휴식도 훈련도 부족한 채로 곧장 체전에 나선 게 저조한 기록으로 이어졌다. 박태환은 아시안게임 이후 2주 가량 쉬었다. 명목상 휴식이지만,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인사하기 바빴다. 체전 개막을 2주 남기고 비로소 제주도로 건너와 몸 만들기를 시작했다.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 자비로 훈련하는 박태환은 글로벌 경쟁자 쑨양(23·중국)이나 하기노 고스케(20·일본)처럼 개인 전용 수영장에서 컨디션을 가다듬을 처지가 못 된다. 박태환은 “주종목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고픈 욕심도 있었지만, 400m는 충분한 훈련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훈련을 일주일 정도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혹사 논란을 딛고 박태환이 체전에서 5종목을 소화한 건 책임감 때문이다. 스폰서십이 끊겨 막막할 때 손을 내민 현 소속팀 인천시청에 대한 책임감, 인천 아시안게임 노골드로 실망했을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 지친 박태환을 일으켜 세웠다.

 대한민국에서 박태환은 공공재다. 미래에 대한 결정권도 선수 자신만의 몫이 아니다. 박태환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 말을 아낀다. 3일 체전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당분간 푹 쉬면서 내년 세계선수권이나 2년 뒤 올림픽에 어떻게 도전할 지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수영연맹의 생각은 다르다. 수영연맹 고위 관계자는 “한국 수영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박태환이 다음 올림픽에 나가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출전 자체가 아니라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 경쟁하는 경기력을 확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전지훈련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박태환에겐 매 순간이 도전이고 시련이다. 박태환은 “후원 문제가 잘 해결되면 기록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제주=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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