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아키야마 감독의 아름다운 뒷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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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운영팀장

옛 직장인 신문사에서의 일이다. 출입처가 바뀌면서 3부 요인이라는 어느 기관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당대의 이슈를 주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A선배의 지시도 있었다. 그 선배는 “가장 잘 팔리는 기사는 인사 기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예상대로 비서실로부터 몇 차례 정중한 거절을 당했다. 결국 ‘뻗치기’를 택했다. 강북의 어느 골목길 끝에 숨은 그의 사택을 찾아갔다. 독실한 교인인 그가 야간 예배를 가는 날을 골랐다. 밤늦게 부인과 귀가하는 그는 말이 없었고, 필자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경호원의 핀잔을 들었다. 당돌한 불청객에게 그의 부인이 “추운데 잠시 들어오세요”라며 은혜를 베풀었다. 소박한 작은 집이 인상적이었다. “둘째 아들 생각이 났다”는 부인의 말로 어색함이 풀렸고, 차 한잔 대접치고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날 그의 비서실장은 무슨 말이 오갔는지 찾아왔고, 평소 점잖을 빼던 고위 간부들도 그날 이후 필부(匹夫)들의 궁금증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A선배의 말이 맞았다. 인사였다. 그가 누구를 쓸 것인지, 조직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요즘 국내 야구판은 인사가 태풍급 이슈다. 미국·일본의 야구계도 시즌을 마친 뒤 감독 교체, 구단 프런트 인사가 연례행사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 2주 사이 5개 팀의 감독이 바뀐 한국 야구의 인사 뉴스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성적, 팀 내 역학관계, 팬덤(fandom·열렬 지지자층)까지 얽히며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쇄신이란 이름을 붙여 자기 인맥을 대거 기용하고, 내홍을 겪으며 갈 지(之)자 행보를 하기도 한다. ‘인사=의리’ 같은 모양새도 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힘을 모으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지만 야구판도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가 보다. 특정 자기 인맥을 기용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판에도 있는 일이고, 국내 스포츠 팀 중에도 똘똘 뭉쳐 잘하는 팀도 있기에 무조건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을 키우지 않고, 인적 청산 방식으로 사람을 바꾸면 그 리더십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가 떠나면 어찌 될 것인가. 팀도, 그도 불행하다.

 최근 읽은 야구판 인사 기사 중에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 있다. 아내의 병 간호를 위해 재팬시리즈에서 우승하고도 자진 사퇴하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아키야마 고지(秋山幸二) 감독의 스토리다. 우승 후 선수들이 열 번의 헹가래를 치며 그를 들어올렸다. 아름다운 퇴장이다.

김종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