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들을 손자.손녀로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년 전부터 가르쳐온 제자들의 아들.딸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예전에 배웠다며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이집트 최고의 태권도 지도자로부터 배운다는 자부심이 있다. 여덟 살의 초등학교 여학생 자즈야는 태권도 8단인 정 사범을 가리켜 "최고의 사범님한테 배우는 것이니 잘 배워야 한다고 아버지가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정 사범은 특히 지난해 아테네 올림픽에서 주가를 올렸다. 이집트 태권도 선수가 중동.아프리카를 통틀어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1984년부터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이집트 대표팀을 맡아 온 그였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한 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해 감독 자리를 내놓는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이집트 대표팀을 위해 그는 스파링팀을 이끌고 가 연습을 돕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비록 동메달이었지만 이집트가 태권도에서 첫 메달을 따내자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집트 태권도계가 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는 순간 "20년의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정 사범은 이집트에 뼈를 묻을 때까지 태권도를 전파하겠다고 말한다. "태권도는 최고의 수출품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카이로 내 스포츠 클럽에서 수백 명의 이집트 청소년을 지도하고 있는 정 사범의 말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