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추진 … 정부는 제동 … 학생만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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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표 교육부총리(사진위(左))가 6일 당정협의에서 지병문 열린우리당 제6정조위원장과 서울대 입시 등 관련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같은 날 전북 부안에서 농활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아래). [연합]

2008학년도 대학입시가 고1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유발한 '내신 파문'에 이어 '논술 파문'으로 또 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이 최근 발표한 통합교과형 논술 중심의 전형계획이 본고사 부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교육혁신위원회, 열린우리당이 한 목소리로 비판에 나섰다. 당정은 6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미 각 대학들이 통합형 논술을 강화하는 방향의 입시계획을 발표한 뒤에 나온 당정 합의에 대해 대학들은 당혹해 하고 있다. 주요 대학들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대는 지역균형선발.특기자전형.정시모집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정원의 3분의 1씩 신입생을 모집하며 이 가운데 본고사 논란을 일으키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정시모집에서 치러진다.

◆ 우왕좌왕하는 교육부=교육부는 지금까지 서울대의 입시계획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왔다.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서도 본고사는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정협의를 거친 뒤 이 같은 입장이 바뀌었다. 서울대가 10월께 발표할 논술 예시문항이 나와야 확실해지겠지만 학생과 학부모, 학원가에서 이미 본고사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 '입시계획 시정'을 설득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서남수 교육부 차관보는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입시계획이 구체화되는 단계에서 논술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내신 비중이 높아지도록 서울대와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논술은 본고사가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어 교육부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대학들 "논술 강화에 대한 오해"=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서울대 입시안을 "교육부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경고하자 서울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섭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통합교과형 논술은 교육부가 금지하는 국.영.수 지필고사와 다르다"며 "새 입시안은 학생부 위주로 선발하는 수시모집 정원을 늘렸기 때문에 교육부의 내신 강화방침을 충분히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사립대들도 당정협의의 결론이 논술 강화에 대한 오해에서 나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본고사처럼 단일 과목의 학습능력을 측정하지 않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검증하기 위해 나온 것이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며 "문제 유형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본고사라고 할 근거가 뭐냐"고 항변했다. 이화여대 박동숙 입학처장도 "본고사를 도입하려고 논술을 강화하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며 "본고사 부활을 우려하기보다는 고교 교과과정에 기반한 논술 문제 유형을 개발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성 연세대 입학관리처 과장은 "특정 계층이 유리하지 않도록 수능.학생부.논술을 골고루 배분해 여러 형태로 선발할 계획"이라며 "논술 강화가 특목고나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 혼란스러운 학생과 학부모=학부모들은 오락가락하는 정부와 대학의 정책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부산외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둔 학부모 정은미(48)씨는 "지방에는 논술 선생님도 없고 논술이 강화되면 불리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학원을 알아보는 엄마들이 많다"며 "하지만 대학이 발표하면 정부에서 제동을 걸고 나오는 상황이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당혹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고교 1학년 딸을 둔 학부모 정미원(43.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학부모들은 통합교과형 논술을 본고사 부활로 받아들이고 기말시험만 끝나면 논술 체제로 전환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 단체들은 반응이 엇갈렸다. 교육과시민사회 윤지희 대표는 "서울대 등 일부대학의 통합교과형 논술은 특목고 학생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크다"며 "이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키로 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교원총연합회는 "학교 간 학력차가 존재하고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면서 대학이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학생 선발권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현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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