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U, 박지성 꼭 필요하다며 적극 구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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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박지성 에이전트 이철호씨.

"유럽 챔피언스 리그가 끝난 뒤인 5월 28일에 맨U(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첫 제의가 왔어요. 그래서 다음날 맨체스터에서 맨U 사장과 면담을 했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뜻밖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나와 있더군요."

박지성의 맨U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맨U 쪽이 먼저 관심을 갖고 박지성의 에이전트를 직접 접촉해 왔다.

당시 퍼거슨 감독의 말. "10경기 정도 지성의 플레이를 봤다. 두 발을 다 잘 쓰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서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정말 데려가고 싶다."

그 25일 뒤 박지성은 맨U 유니폼을 받았다. 입단을 성사시킨 에이전트 이철호(33.FS코퍼레이션 사장)씨를 5일 만나 그간의 뒷얘기를 들었다.

"퍼거슨 감독은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제시한 계약 조건도 좋았고요. 이후 협상도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다만 지성이가 '히딩크 감독님께 미안하다'며 마지막까지 망설였어요."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그리고 그를 프리미어 리거로 보낸 이 사장. 두 사람은 만남부터가 운명적이었다. 1997년 1월. 당시 이씨는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가 1년 만에 걸어나온 25세 퇴출 축구선수였다. 오갈 데 없는 그를 선배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이 수원공고 팀과 함께 운동할 수 있게 배려해 줬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수원공고 운동장에서 그는 박지성을 처음 봤다고 한다. 박지성은 수원공고 2학년에 올라가는 선수였다.

"지성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체구는 작은데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워낙 성실하고 유연하고, 개인기도 뛰어났어요. 게다가 게임을 읽고 물 흐르듯 공을 차는 게 '물건이다' 싶었지요."

숙소에서 한솥밥 먹고, 함께 운동하면서 둘은 '형-동생' 사이가 됐다. 그 후 이씨는 대학(경기대) 때 독학으로 공부한 일본어를 바탕으로 김대의(현 수원)를 일본에 이적시키면서 에이전트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너 대학 가서 몸만 좋아지면 형이 일본 보내줄게"했던 약속을 지켜 2000년에 명지대 2년생이던 박지성을 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시켰다. 이후 2002월드컵 대표를 거친 박지성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으로 진출시켰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리미어 리거로 보냈다.

-처음 맨U의 영입 제의 소식을 전했을 때 박지성은 뭐라 하던가.

"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기 전날 얘기했다. 처음에는 씩 웃더니 '좋긴 좋은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더라. 다른 팀도 아니고 맨U라서 가고는 싶은데,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인지 좀 더 고민해야 겠다며 떠났다."

-히딩크 감독은.

"지성이를 보낸 다음날 히딩크 감독을 만났다. 그는 '깜짝 놀랐다. 맨U가 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지성이를 잡고 싶어했지만 '시간을 좀 달라'고만 했다."

-박지성이 히딩크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맨U로 가기로 결정한 뒤에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힘들 때 자기를 지켜준 은사를 뿌리치고 간다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1년 정도 더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떠나게 돼 감독님께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맨U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까.

"맨U에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차원에서 데려간다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퍼거슨 감독도 '베스트로 뛰게 하기 위해 데려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주전을 확보하는 건 선수 본인의 노력에 달린 것 아닌가."

-유럽 다른 클럽에서 제안은 있었나.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 잉글랜드의 에버튼과 뉴캐슬 등에서 관심이 있었다."

-박지성의 인간적인 매력은.

"말이 별로 없지만 속정이 정말 깊다. 은혜를 입으면 항상 마음에 두고 늦게라도 갚는다. 고등학교 때도 공 챙기기나 청소 같은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박지성은 이 사장과 함께 6일 출국한다. 맨체스터에 도착하면 살 집을 둘러본 뒤 곧바로 팀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클럽에서는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박지성이 원하는 집을 구해 주기로 했다. 자동차는 아우디를 준비했다. FS코퍼레이션은 최태욱(시미즈).김영광(전남).안효연(수원) 등 15명을 관리하고 있다. '제2의 박지성'으로 키우고 있는 어경준(18)은 올해 프랑스 1부 리그 FC 메츠에 입단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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