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줄기세포 가득 있다니 도움될 것 같긴 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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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요즘 신세대 엄마들에게 제대혈(탯줄혈액)이란 용어는 매우 익숙하다. 탯줄을 보관해 두면 아이가 백혈병 같은 혈액암에 걸렸을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내용 역시 이젠 상식이 됐다. 요즘 이 탯줄혈액이 다시 뜨고 있다. 제대혈에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제로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기대만큼 '조급증'을 우려하기도 한다.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성은 기다려봐야 한다는 얘기다.

◆왜 탯줄혈액에 매달리나=과거 탯줄은 태반제제용 원료 외에는 쓸모 없는 부산물이었다. 탯줄혈액에 관심이 모아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혈액.면역세포를 만드는 원천세포)를 추출해 악성빈혈환자를 치료하고부터다. 현재 혈액은행에 보관하는 목적도 이 같은 혈액질환이나 혈액암에 걸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요즘 제대혈이 새삼 거론되는 것은 미래의학의 키워드인 줄기세포 덕분이다. 제대혈에 뼈.연골.지방.근육 등으로 분화하는 중간엽 줄기세포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래의 세포치료제(망가진 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대체)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스스로 재생하고 분화하면서 조직을 만드는 원천세포다. 도마뱀이 잘린 꼬리를 되살릴 수 있는 것도 바로 피부와 조직 내에 줄기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제대혈은 성체줄기세포에 속하지만 골수 등 다른 조직에서 뽑아낸 것보다는 증식.분화력이 우수한 특징이 있다. 특히 배아줄기세포가 봉착한 윤리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는 "원료를 쉽게 구하면서도 종교적 반대 여론을 피할 수 있고, 배아 줄기세포가 극복하지 못한 암 발생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발빠른 임상시험=5일 외신기자클럽에선 국내 한 제대혈은행이 발표한 임상자료가 흥미를 끌었다. 임상 대상 환자는 척수마비.당뇨병 등을 포함해 모두 17개 질환, 184명에 이르렀다.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을 알기 위해 다양한 환자에게 시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발표를 한 히스토스템 한훈 대표는 "면역억제제를 사용하지 않고 간경변, 당뇨, 골다공증, 버거병, 심지어 척수마비에서도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고 제약화에 가장 앞선 분야는 골관절계다. 연골세포 치료제의 경우 5년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올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이를 개발한 메디포스트 양윤선 대표는 "동물실험에서 우수한 관절재생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돼 이르면 2007년부터 임상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대혈 줄기세포는 동물실험에선 의미있는 효과를 나타낸다. 연구자임상 또는 응급임상을 통한 환자 대상 실험 결과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버거병 환자의 혈관이 재생되고, 골다공증 환자의 뼈에선 골밀도가 증가된다. 뇌졸중 환자나 간경변 환자의 경우에도 일부에선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겨진 숙제들=세포치료제의 성공은 증식과 분화능력에서 결정된다. 제대혈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지적된다. 가톨릭의대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인체 내에 주입한 줄기세포가 치료제로 인정받으려면 계속 분화해 망가진 세포를 대체해야 하는데 제대혈 줄기세포는 이러한 분화능력이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실제 동물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6개월~1년 뒤에 확인해 보면 정상세포로 전환한 줄기세포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임상에서도 단기간 효과는 인정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호전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응급.연구자임상이 수없이 진행되지만 아직 치료효과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대혈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법적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현재 16개 기관이 난립,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어 산모들에게 과대 홍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라이프코드 최수환 대표는 "제대혈의 품질 관리를 위해 수집.처리.저장 등의 관리와 이에 대한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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