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데이터, 민간 아이디어를 만나 일자리가 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9호 21면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한 물건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택배회사 콜센터에는 궁금증을 못 이긴 고객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택배회사 직원이었던 김영준(40)씨는 ‘배송 경로를 추적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소비자도 편리하고 택배회사도 업무가 원활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창업에 나선 뒤 2011년 ‘스마트 택배’라는 앱을 선보였다. 지난해 이 앱은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 국내 택배 시장 점유율 2위인 우체국 택배의 배송 정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우체국이 제공하는 배송 정보인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게 도움이 됐다. 이용자가 400만 명을 돌파하며 김씨는 직원을 8명으로 늘려야 했다. 택배회사에서 받는 서비스 요금과 제휴 광고 등 매출이 연간 3억원을 돌파했다. ‘스마트 택배’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선정하는 2013년 으뜸 기업, 구글 어워즈 올해의 앱 등을 수상했다.

공공데이터법 시행 1년 … 꽃 피는 데이터 산업

여대생 신동해(홍익대 산업디자인과)씨는 연인과 데이트 코스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며 데이트 정보를 모은 앱 ‘서울데이트팝’을 개발했다. 단순히 맛집이나 명소 같은 장소를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선’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앱은 한국관광공사의 공공데이터인 ‘국내관광정보’를 활용해 만들었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위해 새로운 데이트 코스를 고민하는 젊은 층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서울데이트팝은 1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신씨 회사는 스타트업 전문 벤처캐피털인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로부터 4억원을 투자받을 정도가 됐다.

공공데이터 개방, 1년 새 6배 증가
공공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을 보장하는 ‘공공데이터법(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 1주년을 맞았다. 김씨나 신씨의 경우처럼 민간의 아이디어와 공공데이터가 결합한 성공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전이었던 지난해 10월 1963개였던 공공데이터 개방 건수는 올해 9월 현재 1만1255개로 6배가량 늘었다. 공공데이터 다운로드 건수도 같은 기간 1만1825건에서 7만9651건으로 7배가량 늘었다.

안행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으나 활용하지는 않던 데이터가 민간의 창의적 발상과 만나 데이터산업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공공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24조원, 이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를 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한 사례도 1년 새 42개에서 333개로 8배가량 늘었다. 농진청의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유전체 정보 분석’, 서울시의 공영주차장 정보를 활용한 주차정보 서비스 앱 ‘모두의 주차장’,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원료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화장품 성분 제공 서비스 ‘화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기업은 고용창출에도 기여한다. 기상청의 보건기상 지수를 활용해 건강을 체크해주는 앱인 ‘하이닥’의 경우 연매출 250억원에 직원수는 214명에 달한다. 기상청 동네날씨예보를 활용해 대기오염, 재해기상 정보 등을 각종 미디어에 제공하는 ‘케이웨더’의 경우 다운로드 250만 건, 연매출 50억원의 실적을 올리며 직원 1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공공데이터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인 법무법인 세종의 윤종수 변호사는 “공공데이터의 개방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변화에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며 “공개된 데이터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성공사례가 나타나면서 기업인들 사이에는 더 많은 공공데이터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감한 정보인 연금·보험 등의 데이터도 공개하는 영국처럼 비즈니스 활용도가 높은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엠컴퍼니 정인모 대표는 “현재 제공되는 데이터는 1차원적 단순 정보인 경우가 많다”며 “데이터 공개는 공급자 측이 아니라 수요자의 기준에서 공개 순서와 범위를 결정해야 민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질 데이터 공개 위한 법령 정비
안행부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향후 데이터 정보공개 원칙을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업적 파급효과가 높은 대용량 공공데이터를 우선 공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개별 데이터를 분산해 개방해왔다면 앞으로는 관련 있는 정보를 패키지로 개방해 비즈니스 활용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 교육자료, 전자도서 목록처럼 서로 다른 기관들이 각각 제공하던 데이터들을 ‘교육·학술 통합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패키지로 제공하는 식이다.

정부는 공공데이터 개방이라는 큰 원칙과 배치되는 개별 법령 등도 정비할 계획이다. 별도의 제공 절차나 제공 요건을 정한 법령, 비용 징수나 독점 제공 등을 보장하는 법령 등이 대상이다. 김진형 공공데이터전략위원장은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해 민간이 필요로 하는 고수요, 고가치 데이터를 선정해 개방할 것”이라며 “아울러 민간시장과 중복된 서비스 실태도 점검해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