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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28% 재생 에너지로 충당 … 脫원전·脫탄소 본격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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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22면

독일의 옛 수도인 본의 케네디대교에 태양광을 이용해 발전하는 솔라 패널이 설치돼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독일에서 태양광·풍력·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가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달했다. 한경환 기자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독일 본의 케네디대교에는 솔라 패널(태양광 판)이 수를 놓은 듯 장식돼 있다. 물론 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태양광 발전에 이용되는 시설이다. 2006년 2.2GWh에 불과했던 독일의 태양광 발전은 2013년 31GWh로 7년 사이 15배 가까이로 늘었다.

독일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가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달린 풍력발전소 또한 독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브란덴부르크·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등 산업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동독이나 북부 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치돼 있다. 풍력 발전량은 같은 기간 30.7GWh에서 51.7GWh로 1.7배가 됐다.

베를린 소재 생태학연구소의 에너지 코디네이터인 카타리나 움펜바흐는 “독일에서 지난해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소비량(11.9%)이 원자력(7.6%)과 갈탄(11.6%)을 넘어섰다”고 소개했다. 전기생산 부문에 있어서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23.9%나 돼 원자력(15.4%)·석탄(19.6%)·천연가스(10.5%)를 앞질렀다. 올해 3분기까지 생산된 전력의 2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이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독일의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에너지 전환이라는 뜻)’에 따른 것이다. 에네르기벤데의 목표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성 있는 에너지 공급→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방지→녹색성장 달성’이다. 마티아스 룩서 독일개발연구소(DIE)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에네르기벤데는 단순히 러시아 등 자원부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탈(脫)탄소 경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탈원전 앞당겨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탈원전 에너지 혁명인 에네르기벤데를 본격 추진한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직후다. 메르켈 정부는 즉시 노후 원전 8기의 가동을 중단하고 나머지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독일엔 원전 9기가 가동 중이다. 내년 그라펜하인펠트 원전을 비롯해 2017년 군드레밍엔B, 2019년 필립스부르크2, 2021년 그론데·군드레밍엔C·브로크도르프, 2022년 이자르2·엠슬란트·네카르베스트하임2 원전을 차례로 멈추게 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의 비중도 2020년 18%, 2030년 30%, 2040년 45%, 2050년엔 60%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독일 정부는 이와 함께 에너지 효율성 제고, 에너지 사용 절약 등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1차 에너지의 효율성을 2020년까지 20%, 2050년까지 50% 높이기로 했다. 에너지 생산성을 매년 2.1% 향상시키고 건물 개조를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

2050년엔 온실가스 80~95% 감축
에네르기벤데를 실행하는 법적 근거는 재생에너지법(Erneuerbare Energien Gesetz·EEG)이다. 2000년 제정된 이 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자에게 20년 동안 고정된 가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실제 전기생산 비용과 시장 가격 간 차이를 메워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Feed-in Tariff)에 의해서다. 정부 보조가 아니라 최종 전력 소비자인 국민들이 운영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전송망 사업자들은 우선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원자력이나 다른 에너지를 앞지르게 된 제도적 뒷받침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생산의 급증에 따라 전기를 수출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에네르기벤데는 독일이 야심 찬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독일은 90년 기준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기로 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최근 발표한 2030년까지의 40% 감축보다 훨씬 높은 목표다. 독일은 2030년에는 55%, 2040년에는 70%, 2050년에는 80~95%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날레나 배어보크 녹색당 하원의원은 “독일의 거의 모든 정당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장기 정책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며 “환경을 가장 중시하는 녹색당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고 있는 석탄·갈탄 화력발전소의 조속한 폐쇄 등 단기적인 정책 목표에 있어 다른 정당들보다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기뿐 아니라 교통·난방 등에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며 “지금 당장 시작하면 효과가 그만큼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에네르기벤데에도 장애물은 있다. 전기료 인상이 가장 큰 문제다. 전기 소비자들은 재생에너지 공급자들이 EEG에 의해 보장받는 높은 가격을 분담하고 있다. 면제 혜택을 받고 있는 대기업을 제외한 일반 가정과 중소 규모 기업들은 올해 KWh당 6.24유로센트(약 830원)의 분담금을 물었다. 2012년 독일의 가구당(3인 기준) 전기요금에서 FIT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8.4%로 늘었다. 매년 10월 다음해의 소비자 부담비용이 책정된다. FIT는 독일 전기요금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독일 전기요금은 유럽 국가들 중 둘째로 높다.

교통·난방 분야서도 감축 노력
에네르기벤데의 성공을 위해선 소비자의 부담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메르켈 정부는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분담금을 삭감하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분담금은 내년엔 KWh당 6.17유로센트로 FIT제도 도입 이후 처음 하향 조정된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경제·에너지 장관은 “전기료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게 긴급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독일 대연정은 풍력 생산 설비의 설치를 줄이고 바이오에너지 생산 시설을 늘리는 것도 제한하기로 했다. 해상 풍력에너지의 경우 2020년 생산 목표를 기존 10GWh에서 6.5GWh로, 2030년 목표는 25GWh 대신 15GWh로 각각 낮추기로 했다.

가장 저렴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연료인 석탄·갈탄 사용량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독일의 NGO 환경단체인 분트(BUND)는 “갈탄 탄광 등의 고용 문제로 석탄·갈탄 화력발전소를 당장 폐쇄하기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이 때문에 독일의 최근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다시 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일 환경부 유럽기후에너지정책 담당자인 지몬 마르는 “특단의 대책이 없을 경우 2020년까지 온실가스 40%를 줄이겠다는 목표에 차질이 생겨 34%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총 830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생에너지 신규 송전망 구축도 과제다. 재생에너지의 주 생산지인 북부와 동부에서 산업이 집중해 있는 남부로 공급되는 전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건설비 부담과 함께 경관 훼손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에네르기벤데는 독일이 선진 환경기술력을 앞세워 지나치게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이 국가 간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는 항의도 빗발쳤다.

재생에너지 증산에 국제협력 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네르기벤데는 지구촌의 당면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원전 제로와 재생에너지 증산, 에너지 효율성 제고, 에너지 절약을 중심으로 한 야심 찬 에네르기벤데의 성공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훨씬 높다.

환경부의 마르 유럽기후에너지정책 담당자는 “전 세계가 독일의 에네르기벤데를 지켜보고 있다”며 “이 실험이 자칫 실패할 경우 선진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녹색성장을 이뤄내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 소재 국제재생에너지국(IRENA)의 시장·기술 담당인 롤란트 뢰슈는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생산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기술 및 교육 지원 등 국제협력을 강조했다.

독일의 에네르기벤데는 EU의 획기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EU 28개국 정상들은 지난달 24일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보다 최소 40% 줄이기로 합의했다. 또 2030년까지 EU가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량의 최소 27%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에너지 효율도 27% 높이기로 했다. EU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대비 20% 줄이겠다고 설정한 기존 감축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독일 생태학연구소의 기후분과책임자인 마티아스 두베는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묶어놓는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일과 EU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본=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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