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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 <2> 숫자 수수께끼를 풀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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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박사 일선 형사로 일하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 범죄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전문 프로파일러가 됐다. 현재 개인 연구소인 ‘범죄과학연구소’를 차리고 범죄수사 기법을 연구하고 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40대 중반으로 개인사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날카롭고 엄격한 성격이지만 어린이와 피해자 등 약자에게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

나설록 도일초 6학년. 다섯 살 때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부모와 누나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이는 아직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당시 서울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였던 표 박사가 요양원에 있던 설록의 법적 친권자인 할아버지 동의를 얻어 ‘후견인’ 자격으로 설록을 데려와 연구소에서 지내게 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엄청난 충격(트라우마)으로 인해 또래에 비해 조용하고 우울한 성격. 어려서부터 연구소에서 훈련받은 덕에 비상한 두뇌 회전과 추리능력, 범죄심리와 수사기법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추고 있다.

‘설록’이라는 이름은 ‘눈 속의 초록’이라는 뜻이다. 엄마가 만삭일 때 할아버지 위독 소식을 듣고 눈길을 뚫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양수가 터져 갓길에서 설록을 낳았다. 의사인 아버지가 직접 설록을 받았다. 출산 당시 엄마가 도로변에 쌓인 눈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아기 모양의 상록수 잎사귀를 보고 ‘설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김 선생 범죄과학연구소에 사건을 의뢰하러 찾아온 노신사. 평생을 교사로 봉직하다가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뒤 고향인 고난시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친구가 맡기고 간 국보급 보물이 갑자기 사라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문 기사에서 본 표 박사 범죄과학연구소의 문을 두드렸다.

차홍주 설록이 표 박사와 함께 살게 된 이후 줄곧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던 단짝 친구. 부모가 모두 경찰관.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우울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며 가끔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설록을 피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설록의 사정을 아는 부모님의 꾸준한 설명과 설득으로 지금은 단 하나밖에 없는 설록의 친구가 됐다.

의문의 숫자 36.538592, 128.018426…. 설록은 숫자를 공책에 옮겨 적고 한참 들여다봤다. 공책을 거꾸로 들었다 옆으로 돌려 보기도 했다. 바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글씨나 표시, 혹은 이미지가 보일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때, 정적을 깨는 요란한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소리에 놀란 방구름 연구원이 황급히 나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설록이 집에 있죠?”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차홍주다. 홍주는 설록과 7년째 같은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으로 부모가 모두 경찰관이다. 가냘프고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태권도 3단의 유단자로 웬만한 어른 몇 명은 기습공격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괴력 소녀다. 최근 복싱을 배워 날렵함이 더해졌다. 성격이 급하고 덜렁대는 탓에 가끔 설록에게 핀잔을 듣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설록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해주는 든든한 보디가드다.

“설록아! 설록아, 어디 있어?”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쳐대는 홍주의 소리에 설록은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다. 홍주는 설록과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어른을 번갈아 쳐다 본 뒤에 멋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김 선생은 홍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표 박사는 손짓으로 홍주를 불러 설록 옆에 앉게 하고는 김 선생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의문의 숫자는 범인이 남긴 장소?!

설록은 귀엣말로 홍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했다. 공부나 독서보다는 운동과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홍주가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홍주는 큰 관심을 보였다.

“이거 혹시 죄수 번호 아닐까?”

“죄수번호는 소수점이 없지.”

“그럼 혹시 어떤 책의 페이지 수 아닐까? 셜록 홈즈 소설에서 그런 장면 있었는데?”

“책의 페이지 수에도 소수점은 없어.”

홍주는 휴대전화 계산기 어플을 열고 숫자를 넣어봤다. 여러 가지로 계산을 시도하다 이내 전화기를 소파에 던져버렸다. 그러다 문득, 설록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주소나 우편번호 같은 것 아닐까?”

김 선생과의 대화에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던 표 박사가 홍주의 우편번호라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야. 만약에 누군가 일부러 남긴 숫자라면, 장소나 위치를 표기하는 숫자일 가능성이 높지. 보물을 찾고 싶다면 이리로 와라, 그런 의미로 말이야.”

홍주는 표 박사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설록을 향해 턱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표 박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홍주야, 우편번호나 주소에는 소수점이나 8자리 이상의 숫자를 쓰지 않아. 그래도 좋은 시도였어. 조금만 더 생각해 보렴. 숫자들의 특징을 잘 보고. 지리 관련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지리좌표계로 의문의 숫자를 풀다

표 박사의 말에 힘을 얻은 홍주는 설록의 손목을 잡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록이 얼굴을 찌푸리며 저항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홍주는 설록의 손목을 잡은 채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2층 연구실에 있던 방구름·홍두재 연구원이 내려왔다. 두 연구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김 선생과 가짜 고서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표 박사를 뒤로 하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에선 설록과 홍주가 지리·지도·지구과학 등과 관련된 책들을 잔뜩 꺼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방구름 연구원이 “무얼 찾는 거야?”라고 묻자 홍주가 의문의 숫자가 적힌 종이를 보여줬다. 의문의 숫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두 연구원도 본격적으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설록이 작은 소리로 외쳤다.

“이거다! 지리좌표.”

지구상의 모든 위치를 두 좌표 값, 위도와 경도로 표시할 수 있게 한 것이 ‘지리좌표계’다. 설록은 창가 테이블에 있던 지구본을 가져와 설명을 시작했다.

“지구본에서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그어진 평행선이 위도고 동서로 수직으로 그어진 수직선이 경도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 그어진 본초자오선이 경도의 중심이고. 예를 들어 가장 북쪽에 있는 북극은 북위90도, 반대로 남극은 남위90도지.”

“그럼 소수점은 뭐야?”

“위도와 경도의 거리는 133.33㎞나 돼. 그 사이에 있는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소수점이 필요한 거야.”

설록의 설명을 듣던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있는 두 연구원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거 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건데!”

그러자 홍주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이구, 박사 공부를 하면 뭐해, 초등학생만 못한 걸”

“야, 홍주 너도 이 나이 돼 봐. 옛날에 배운 건 다 잊어버린다니까. 너희 초등학생들,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홍두재 연구원의 너스레에 방구름 연구원이 쓴 소리를 날렸다.

“그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야. 애들 앞이라도 부족한 건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아니, 누나도 전혀 몰랐으면서 괜히 나만 갖고 방귀 뀌는 소리만 해요?”

홍두재 연구원이 투덜거리자 방구름 연구원이 꿀밤을 날렸다. 홍두재 연구원은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설록은 두 사람의 실랑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전도’를 펼쳐놓고 손가락을 자처럼 활용해 무엇인가를 재고 있었다. 홍주가 설록에게 답을 찾았냐고 묻자. 설록이 지도를 보면서 대답했다.

“절반 정도….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266km 정도 내려와서 동쪽으로…이만큼. 경상북도 상주. 더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위성항법시스템 GPS 같은 장비가 필요해.”

설록의 이야기에 홍두재 연구원이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가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내려왔다. 그의 입가에는 스스로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미소가 가득했다.

“홍두재 오빠, 답을 알아냈구나.”

홍주가 놀림 반 감탄 반의 탄성을 질렀다. 방구름 연구원은 “너, 정답 찾은 것 아니면 꿀밤 맞을 줄 알아!”라며 으름장을 놨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홍두재가 입을 열려던 순간, 혼자 지도책 여러 권을 펼치고 조사를 계속하던 설록이 혼잣말을 했다.

“황령사”

홍두재 연구원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그 모습을 본 방구름 연구원이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뭐야, 황령사가 맞아? 설록이 컴퓨터만큼이나 빠르고 똑똑한 거야?”

“아뇨, 전 그냥 대축척 지도가 있어서, 경도선을 따라가다 보니 산이 나오고 그 산에 절이 있어 그 이름을 읽은 것뿐이에요.”

설록의 말을 듣고 있던 홍두재 연구원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컴퓨터에 있는 위성 지도 프로그램에 36.538592, 128.018426을 입력했더니 경북 상주시 은척면 황령1리에 있는 ‘황령사’가 나왔어요.”

어린이 템플스테이 행사 열리는 황령사로

비밀을 푼 네 사람은 서재를 나와 표 박사를 찾았다. 마침 김 선생은 돌아가고 없었다. 표 박사는 모두 머리를 모으고 협력한 결과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박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고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트북 컴퓨터를 조작하던 홍두재 연구원이 환한 표정으로 황령사의 어린이 템플스테이 소식을 전했다. 표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은밀히 알아봐야 할 단계라서 어른들이 나서기엔 적절하지 않았는데 잘 됐다. 설록이 템플스테이 한번 해 볼래?”

“네, 물론이죠”

즉각 나온 설록의 대답에 홍주도 손을 번쩍 들었다.

“박사님, 저도 갈래요. 저도 템폴스키 타고 싶어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거실은 폭소로 가득 찼다. 웃지 않는 사람은 홍주 밖에 없었다. 어리둥절한 홍주에게 설록이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귀엣말로 뭔가를 설명했다. 설록의 설명을 들은 홍주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하하, 분위기가 심각해 웃으라고 한 말이죠. 잘도 속으시네요. 하하하 템플스테이, 절에서 자고 생활하는 거잖아요.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홍주의 얼굴은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홍주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겠다며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곤 뛰어나갔다. 억지로 웃음을 참던 네 사람은 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폭소를 쏟아냈다. 하지만 곧 현실 속 숙제로 돌아왔다. 설록이 황령사에서 주의해야 할 점과 찾아야 할 것들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표창원 박사의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일지 1차 미션 Top5

많은 소년중앙 독자들이 1화 ‘의문의 숫자의 비밀을 풀어라’라는 미션에 응모했습니다.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마감에 맞춰 정답을 보내온 독자들 중 표창원 교수가 우수한 추리를 적어낸 5명을 직접 선정했습니다. 저학년에겐 가산점을 부여했습니다.

1등 정수민(용인 상하초 4), 2등 김동현(수원 영덕중 2), 3등 이정현(울산 달천고 3), 4등 육준형(용인 상하초 4), 5등 이가은(부산 동성초 5). 축하합니다.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 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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