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가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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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와 교회의 권력분립을「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라고 한다.
교회에는 세속적 권력이 없고 동시에 국가는 종교문제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원칙이다.
현대의 국가들은 그 원칙에 따라 종교문제에 간여하지 않고 초연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것은 주로 17세기 영국 철학자「존·로크」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간단히 성립된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정교의 혼합체인 일종의 신정국가였다. 지금같은 민주주의는 아니었으나 「예레미야」, 「에스겔」등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입장에서 백성이든 군주든 거리낌 없이 비판과 실망을 서슴지 않았다.
「신약」 에 보면 정교분리는 「예수」자신의 주장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가이사의 것」과「하느님의 것」사이의 구분이 명시되지 않은 점을 주시한다. 거기서 분명한 것은 정상적으로 구성된 국가적 권위는 통치권을 행사할수 있다는 인정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손대지 못할 하느님의 거룩한 영역이 정치적 국가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 선언이 인정한 사실이다.
나치에 항거하고 공산주의에 적대하는 것은「하느님의 것」을 「가이사」에게 내주지 않으려는 신앙적 투쟁이라는 입장도 있다.
중세의 철학자「토마스·아퀴나스」는 「두 자루의 칼」의 원리로 교회우위논을 펴고 있다.
교회와 국가는 모두 인간을 위해 신이 제정한 제도다. 그러나 궁극의 목적은 영원한 구원인만큼 현세적 국가권력은 교회권에 종속해야한다. 따라서 「두 자루의 칼」은 모두 교회에 속하며 다만 그중 하나는 교회의 일꾼인 정치권에 맡겼을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16세기 영국의 정치학자「토머스·홉즈」는 국가우위논을 폈다. 국가의 최고권력은 하나뿐이며 그가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를 통치한다. 두 자루의 칼은 그가 모두 가져야한다는 설이다.
역시 칼은 종교와 끊을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중세의 교협법은 종교재판을 통해 수백만명을 처형했다. 특히 유대인이 이단으로서 박해를 받았다.
오히려 『칼이 아니면 코란』을 강요한 이슬람이 유대교나 기독교에 대해 관대했던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정교분리는「국가와 교회」사이 보다도 「교회와 교회」의 관계에서 얼마나 국가가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취하는가를 뜻하는 일면도 있다.
개신교가 우세한 미국이 행여 가톨릭을 백안친하는 사회풍조를 피하기 위해 헌법수정 1조에서 특정종교를 국교로 하는 것을 금하고 신앙의 자유의 방해를 금한 것도 그것이다. 지금 현대 민주국가들은 어디서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 정교분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두 부모를 가르듯이 분명한 선을 쉽게 찾을수는 없다. 서로 존중하는 길만이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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