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연정 쓰나미' 정치권 휩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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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검토' 발언과 관련, 정치권은 개헌론으로의 연계 등 정치적 파장을 염두에 두고, 청와대와 여당의 후속조치에 대해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특유의 위기돌파 스타일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발언 의도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의도적인 야당 흔들기'라며 비난공세를 강화하고 나섰고, 민노당은 '연정불가론'을 두고 미묘한 당내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 속에 정치권 흔들기를 통해 야당의 결속력 약화를 꾀하고,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경제실정에 대한 국민 관심을 정계개편론으로 호도하려는 의도와 함께 여당의 '수적 우위'에 대한 강한 열망이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석) 숫자가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정책공조를 하는 정도는 이해한다"며 "정책공조 이상으로 인위적인 여대 만들기에 나선다면 큰 악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이번 발언은 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로 봐서 깊은 생각을 갖고 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의석이 3 ̄4석가량 과반에 모자라는 데 대해 엄살을 떨면서 국민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일으켜 돌파하려는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이 의도를 갖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전여옥 대변인은 "연정 발언은 작심하고 흘린거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지 모른다"며 발언 의도를 경계했다.

전 대변인은 "(여권이) 우선 정국운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개헌론과 맞물려 재집권하고자 하는 의도이며, (정치권에) 판을 흐트려보고 바람을 넣어보고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페어게임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연정의 실현 가능성이나 개헌론으로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민노.민주와의 '소연정' 가능성과 관련, "우선 민노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민노당은 지난번(국방장관 해임안) 공조로 노동자.농민의 대표가 강자와 붙어 야합했다는 '도덕성 상실'의 피해를 입었다. 앞으로(연정에 참여)하면 민노당은 해산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도 여러 계산을 하겠지만 가능성은 적다" 며 "호남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절반 정도로 떨어져 오히려 열린우리당 호남출신 의원들이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분위기"라고 민주당과의 연정 가능성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승민 실장은 개헌론과의 연계 가능성과 관련, "지금 대통령이 개헌을 말한다고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을 흔들려는 의도일 수 있겠지만 당내에 개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의원도 많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과 관련, "의도적인 야당 흔들기"라며 비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유종필 대변인은 불교방송 '고은기의 아침저널'에 출연, "노 대통령이 느닷없이 연정을 내놓은 것은 국정운영 실패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정치권과 국민에게 '딥임팩트'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최인기 부대표도 "연정발언은 노무현식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대통령 심정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라며 "연정을 한다면 국민에 대해 공동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민주당이 국민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여당과 연정을 할 리가 없고 연정구상은 국민적인 공감대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특히 추미애 전 의원 등 당 인사에 대한 입각 제의설이 다시 불거지자 "대통령이 민주당을 흔들고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발빠르게 사실확인 작업에 나서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유종필 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추 전 의원과 전화통화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추 전 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국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며 "민주당 소속 전직의원을 모독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반응에서는 미세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지도부가 밝힌 공식 입장은 일단 '연정 불가론'이지만 노회찬 의원 등 일각에서는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5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김인영입니다'에 출연,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은 국면전환용인 것 같다"며 "지금은 연정을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심 부대표는 또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연정의 조건이나 실천 방도가 전혀 거론되지 않는 현 수준에선 대연정이든, 소연정이든 불가능하다"며 "경제.민생, 반전.평화 분야는 여당과 공조가 힘들겠지만 개혁공조는 언제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회찬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입각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혀 대조를 이뤘다.

노 의원은 특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국가보안법 폐지, 비정규직법 문제 해결 등을 연정의 구체적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이 세 가지는 국민적 명분이 충분히 있는 만큼 수용된다면 (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의원은 지도부의 '연정불가' 입장에 대해 "극과극의 의견차가 아니다"면서 "비관 또는 낙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뿌리가 다른 것은 아니다"며 자신의 입장이 당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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