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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0)<제77화>사각의 혈투 60년(8)김준호|내리막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상대를 얕보다가 큰코다친 로하스와의 사투 15라운드 후 래커 룸에서 땀을 씻고 나오자 우리 앞에는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체육관의 복도에 열댓 명의 사나이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한 사나이가 나서며 무겁게 말했다. 『어이, 「슈·강일」! 너 돈 받아먹고 져줬지?』
이들이 도박꾼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서강일이 당연히 이길 줄 알고 돈을 걸었다가 어처구니없는 손재수에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그들의 기분에 이해가 갔다. 우리를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경기의 경과를 보면 월등히 우세한 서강일이 관객들을 미치도록 흥분시키면서 드러매틱한 복싱 쇼를 변인 것에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수되었기 때문에 최후순간에 가능했던 역전KO승을 극적인 미수에 그치는 것으로 각본을 짠 것』이었다.
잃은 돈 내놓으라고 대들 것 같은 일촉즉발의 험악한 공기가 감돌았다. 기가 막혔다. 분통이 터지는 심정은 그들이 우리에게 비할 바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감정대로 맞붙어 싸울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컴컴한 복도에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몰랐다. 달래야 했다.
『나도「슈·강일에게 돈을 걸었다. 나나 당신들이나 똑같은 입장이다.』
20여분 동안이나 옥신각신하다 체육관 직원들이 달려온 덕에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며칠 후 이번에는 「로페·사리알」이 시비를 걸어왔다. 2, 3차 전에서 번 파이트머니 중 『약1만2천 달러(현재의 약 5만 달러 상당)를 내 놓으라』는 요구였다.
당초 미국원정이 「사리알」의 주선에 의한 것임은 이미 밝혔다. 그 때 라모스와 1게임을 갖고 서강일이 3천 달러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사리알」과 계약을 했었다. 그런데 경기 후 우리는 미국 프러모션 측으로부터 놀랍게도 9천 수백 달러를 받았다. 입장 수입중의 소정 배당금이 추가된 것이다.
계약 때의 파이트머니의에 선수는 입장 수입 중 15∼25%를 배당 받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l차 전 직후 나는「사리알」의 요구에 따라 3천 달러 및 숙식비를 제한 나머지 약5천 달러를 이미 넘겨주었다.
그런데도 「사리알」은 2, 3차 전의 수입(9천+1만2천5백 달러)에 대해서까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 3차 전은 「사리알」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내가 독자적으로 미국 측과 협의하여 이뤄진 매치였다.
「사리알」은 일본에서 제소까지 했으나 내가 귀국 후 「사리알」의 변호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슬그머니 취하하고 말았다.
서간일 에게 있어 미국체재 약4개월간은 복서로서의 화려한 절정기였을 뿐 아니라 한 젊은이로서도 꿈 같은 세월이었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가 있었다.
2차 전을 끝낸 며칠 후 미국을 순회 중이던 프로레슬러 김일씨를 만나 영화배우 필립 안씨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댄스홀에 갔다. 여기서 서강일은 한 프랑스 처녀를 소개받았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 큰 규모의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는 고모의 초청으로 몇 개월 전 미국으로 건너온 갓 스물의 예쁜 아가씨였다.
그날 후 처녀는 거의 매일 숙소(알렉산드리아호텔)로 전화를 하거나 찾아왔고 두 청춘의 데이트가 잦다 싶더니 얼마 안가선 서강일 이 밤까지 새고 아침에야 들어오기 일쑤였다.
서강일 은 영리해서 일상적인 영어회화를 금방 익혔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사람이 깊이 지속된 것은 사실이다. 아가씨의 정성이 지극했다. 서강일이 나중에 멋진 승용차를 이 처녀에게 선물했을 정도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로하스」와의 경기에서 서강일이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다가 기습일격을 맞고 나가떨어진 것이 사람에 들뜬 정신상태와 관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절정에 이르면 다음엔 내리막길일 수밖에 없는 것이 복서의 길.
서강일은 미국원정 이후 약4년 동안(71년에 은퇴) 선수 생활을 계속했으나 더 이상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나와 의견 충돌도 잦아졌고 홀로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무절제한 사생활 때문에 전제적인 재질은 급속히 녹슬어 갔다.
68년2월 4명의 남녀친구와 어울려 탈선, 폭행과 통금위반으로 즉결에 넘겨지더니 26살 때인 70년8월엔 대연각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술값을 계산 않고 오히려 행패, 『술만 마시면 술집 기물을 부수고 종업원을 때리는 상습적인 폭력 행위자』로 몰려 구속되기도 했다.
74년 프로모터로 등록했으나 별다른 실적을 못 남긴 서강일은 현재는 미국·일본을 왕래하면서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에 사무실을 둔 태평양 여행사 직원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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