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잘못 써 붕괴 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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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현저동 지하철공사장 붕괴사고는 지반균일이나 허술한 H빔설치, 토류판 미비보다 폭파방식의 잘못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우리 나라 유일의 방재공학박사 이규학씨(41·미 노드캐롤라이나대 교수)는 12일 사고현장에 대한 조사결과 『붕괴사고의 원인은 인장공법(인장공법=바위를 결에 따라 뜯어내는 방법)을 써야할 측면공사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며, 『더구나 사고지점에서처럼 밀집공을 뚫어 동시에 폭파하면 그 압력이 밀폐된 공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안에 설치된 철골구조물이나 암반의 측면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박사는 사고직후인 지난 8일 하오 3시간 동안 현장조사를 마친 뒤 『서울시내 대부분의 지하철공사장에서 공기단축 등을 이유로 이와 비슷한 폭파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각 공구의 지형조건에 따라 폭파작업에 좀더 신중하지 않을 경우 같은 유형의 사고가 다시 일어날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박사는 특히 우리 나라에서 주로 쓰고있는 오픈커트방식(개착식)의 경우 폭파 때의 압력이 공중으로 발산돼 위험을 막는 이점이 있으나 차량통행을 위해 복공판을 깐 채 폭파작업을 하고있기 때문에 터널과 마찬가지 구조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암질, 지층의 구조, 주변공간의 크기 등에 따라 종류가 다른 폭약을 써야하는 것은 물론 폭약장전을 위한 드릴링(천공)의 깊이·굵기·각도·간격 등에 면밀한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폭파과정에서 ▲장약량의 과다 ▲천공수법의 미숙 ▲지질판단의 오류 등 잘못이 있으면 진동이 적은 폭약을 썼다하더라도 폭발력의 역반응이 커져 폭파중심부에는 진도5이상의 지진과 같은 위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무진동 정밀폭약을 쓰더라도 천공수를 10개 이하로 제한해야하고 각 폭약이 터지는 시간간격을 0.2∼0.3초 이상으로 하여 연쇄폭발의 위력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데도 사고현장에서는 천공수를 8∼12개씩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폭파시간도 동시폭파방식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번 사고현장의 경우 ▲방폭장치가 된 화약보관시설이 없었는데다 ▲복공판의 일부를 열어 압력발산을 유도하지 않았고 ▲차량·통행인의 통제도 외면했으며 ▲심지어는 폭파작업 바로 위나 주변에서 일하는 기술진들에게조차 알리지 앉아 사망자의 대부분이 발파공이 아닌 강재공·크레인기사·착암공 등으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이 박사는 구체적인 폭파작업의 잘못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사용한 폭약종류, 폭파로 갈라진 암반형태, 사고 후 구조물과 측면의 붕괴상태, 장약된 채 회수하지 못한 다이너마이트 등에 대한 면밀한 현장감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최근 경찰수사로 나타난 ▲차도와 인도사이의 지반균열 ▲H빔의 부실한 가설상태 ▲토류판(쏟아져 내리는 흙을 막는 나무판)제거 등은 사고원인이 아니라 폭파작업의 과정이나 결과로 생긴 것뿐이라고 못박았다.
이 박사는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이번 사고는 ▲현재 공정 10.6%의 사고 공구가 3호선 전체 공정(28%)에 따라가기 위해 하루에 2백 여개의 천공을 했고 ▲화약을 취급할 수 있는 기능인이 2급 자격자 1명 뿐으로 작업량을 감당할 수 없었으며 ▲지난해 공사착수이후 이 같은 폭파방식을 계속해온 탓으로 지하가설물이나 측면의 지반 등이 위험도를 넘을 만큼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또 공사발주가 늦은 3, 4호선의 도심구간은 ▲전반적인 기능인력부족 ▲시설과 능력보다는 정책적으로 결정되는 공기 ▲타성에 의한 안전수칙무시 등의 공통된 여건을 갖고있어 커다란 방향전환 없이는 새로운 사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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