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영 필립공 이집트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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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이집트속담에 『깊은 우정에도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의 영국과의 관계가 바로 이 경우였다.
수년동안 나는 영국인들의 적으로 영국점령군들을 피해 도망 다니며 살아야했었다. 나는 영국인들 때문에 이집트군에서 축출 당했으며 그들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영국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나는 그들에게 굴복하지 앉았고 나의 원칙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협박을 하고 달콤한 약속을 해오기도 했지만 나를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항의의 표시로 카이로주재 영국대사관을 폭파시켜 버릴까하고 여러번 생각했었다. 내 눈에는 영국대사관이 이집트의 치욕의 상징으로 보였고, 영국대사는 이집트 정부·의회·국민 그리고 국왕 위에서 이집트를 통치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영국인들은 오래 전에 이집트를 떠났고 우리의 혁명은 성공했다. 그 이후 나는 영국정치인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발전시켰고 최근에는 「엘리자베드」여왕폐하를 비롯해 왕실가족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81년 여왕의 부군 「필립」공이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를 이스메일리아로 오찬에 초대했다. 우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다가올 「찰즈」황태자의 결혼식을 포함해 여러가지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필립」공은 「엘리자베드」여왕과의 결혼식기념일이 우연히 나의 내자 「지한」의 생일과 같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가 내자의 생일을 알고 있음에 놀랐으나 그는 「지한」과 「엘리자베드」여왕이 얼마전 서로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필립」공은 자적수준이 매우 높은 분이며 진정한 체육인에다 많은 경험을 쌍은 훌륭한 정치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겸손했고 세련되었으며 솔직했다.
우리는 불안한 세계정세에 관해 유익한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영국과 이집트간의 관계가 이토록 밀착해질 것으로 생각이나 했겠읍니까. 본인은 73년 10월 전쟁을 전후해서 영국이 보여준 태도에 깊은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영국은 우리에게 정밀무기를 판매했고 우리의 보급품조달을 도와주었읍니다.
이 같은 정책은 영국이 과거 이집트점령기간이나 56년 수에즈전쟁 때에 보였던 정책에 비하면 훨씬 적극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습니다.』 「필립」공은 나의 이 같은 찬사를 정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필립」공의 이스메일리아 방문 후 카이로주재 영국대사가 그의 관저에서 「필립」공을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나는 이집트가 은혜에 보답할 줄 알며 또 영국의 지원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다시 알리고 싶었다.
동시에 이집트는 어떠한 침략에 대해서도 명예를 지킬 것임을 그가 인식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영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도 만찬에 참석하겠다고 요청했다. 「필립」공과 대사는 당초에 초청하지 않았던 나로부터 이 같은 제의를 받고 놀라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이 의견절차를 무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고의적으로 그 같은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필립」공과 영국은 이집트와 이집트대통령이 무례하다고 혹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옇든 나는 내 일생 처음으로 영국대사관저를 방문했다. 과거 영국점령시대에 음모의 본산이었던 대사관저가 이제 우호적인 장소로 변해있었다. 내가 받은 환대는 마음 깊숙이 우러나오는 아주 정중한 것이었다.
나는 대사관저의 이방 저방을 둘러보면서 역대 카이로주재 영국대사의 초상화를 모두 살펴보았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로는 단 한사람 「크로머」대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았다. 영국인들이 그의 초상화를 떼어놓은 것은 나에 대한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 「크르머」대사시절 「사다트」는 반영민족주의자로 낙인 찍혀 영국의 압력으로 투옥되었다. 본지 82년2월15일자 「사다트」회고록 제1부 21회 참조) 그러한 배려는 나의 감정을 존중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찬도중에 나는 과거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있을 때 항거의 표시로 영국대사관을 폭파시켜 버릴 것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아 모두 함께 웃었다.
그날 영국대사관저의 만찬에서 나는「필립」공에게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 얘기는 바로 「팔레비」 전 이란왕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훗날 「팔레비」왕과 나와의 관계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립」공이 만찬 후 「팔레비」왕에 관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훗날로 미루려던 계획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립」공은 「팔레비」왕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필립」공은 내가 「팔레비」왕이 죽기 전 만났던 마지막 정치인이었으므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나는 「팔레비」왕이 이란으로부터 축출된 후 이집트의 애스원에 왔을 때 「팔레비」왕부처와 만난 이야기를 「필립」공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필립」공에게 당시 내가 「팔레비」왕에게 『왜 당신의 공군과 해군을 이란으로부터 철수시키지 않습니까』고 질문한바 있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제의한 것은 「호메이니」옹이 이란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이란의 육·해·공군은 「팔레비」왕에게 충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수하는 이란군에 이집트에 기지를 제공할 용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팔레비」왕에게 말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란의 국내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왕의 군대가 이집트에 주문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읍니다.』
그의 답변은 모든 희망과 결정을 내릴 능력을 상실한 사람의 대답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힘없이 말했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없어요.』
나는 그 순간 「팔레비」왕의 통치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그가 이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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