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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식 개혁은 새역사 창조작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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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근세를 정신사의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는 중대한 역사의 전환기다. 조선조중엽이후 실학파선비들에 의하여 서서히 진행된 개명·개혁의 의지는 조선왕조의 패망을 전후하여 일어난 개화운동에 이어져 국민국가건설의 정신적토양을 조성했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강점에 대항한 민족독립운동은 1948년 대한민국의 탄생을 보게된 지루한 산고였다.
6·25란 빈사의 홍역을 치렀고 두번의 거센 혁명을 겪어왔으나 한국은 그 속에서도 자라고 커서 이제는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늘의 한국은 자존을 위한 자기의 특유한 존재의 정체를 확립하는 일과 세계와 인류에게 기어할 세계사적 사명의식의 확인이란 두개의 과제를 지니고있다. 그리고 내일을 새롭게 창조할 벅찬 꿈을 안고 나선것이 바로 1980년대의 한국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바로 이 싯점은 내일을 창조하기 위한 오늘의 준비로서 과거를 일단 청산하는일, 그리고 산업사회에 적응할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민의식과 새역사를 창조적으로 주도할 역사의식을 갖추어가지않고는 새시대의 장을 열고 들어설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역사가 자랑스러운것, 보전할것, 더욱 신장하고 선양해야할것도 많지만 동시에 버려야 할것, 없애야할것, 씻어내야만할 때묻고 오염된 역사도 적지않다. 조선왕조를 멍들게 했던 사색당쟁과 파벌·족벌정치며,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서도 이념적 대결과 파벌대립으로 민족독립전선을 약화시켰던 과거, 그리고 해방30여년간에도 지연·학벌·파벌등이 민족적이익에 선행됐던 흐린물등은 더이상 흐르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뿐이랴.
조선왕조말기로부터 일제시대를 이어온 관존민비, 탐관오리등 백성·국민부재의 권력만능풍조며, 과거양반심리로부터 시작된 자기과장과 허세, 그리고 지나치게 자기를 확대함으로써 남을 위압하고 속여먹는 기만의식, 가짜박사, 과장된 이력서, 동양제1, 세계제1등 내실보다 외형을 장식하는 협잡의식등은 모조리 청산해야한다.
질서란 어느시대나 요구된다하겠으나 조선조5백년간 왕과 근신들에의한 독단적인 전횡질서, 일제의 수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법질서, 해방후 30여년간 권력과 금전에 시녀가 되었던 법질서등으로 인하여 법을 지키는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고 새치기, 탈법이 출세와 영달의 지름길로 인식되었던 추악한 과거를 그대로두고 새 역사를 창조할수없다.
더군다나 국권을 잃었던 공백기간에 침입한 공산주의 사상과 광신적인 일제군국주의 정신은 그오염이 해방된 이땅에서도 한세대를 더 지속하고있다. 이같은 불행한 과거는 그로인하여 오늘 우리사회에 지식인의 냉소주의와 부신의 장벽을 높아지게했고 개인적 성실성과 사회적공정성을 무색하게했다.
그리고 이러한 악폐가 다만 일시적습성으로 거죽에만 때묻은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의 마음바닥에까지 깊이 젖어들어 의식구조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생사결판을 다짐한 결의를 갖지 않고서는 그 근절이 어렵다고본다. 한국은 과거 8·15가 이러한 청산작업을위한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만 놓쳐버렸다. 그것은 남북분단과 공산주의에 대항하려는 대한민국의 이념적·군사적투쟁의 필요성, 그리고 이승만의 정치권력의 구축을 위한 필요성때문에 친일잔재세력을 앞장에 기용함으로써 민족정기와 민족의 정신사적정통성을 선명히 계승시키지 못했던데 기인했다.
다음은 5·16군사혁명이 또 한번의 기회였는데 혁명을 혁명으로 끝내지않고 결과적으로 정권쟁춰의수단으로이용했기때문에구정치인및· 그들과 영합일치되었던 일부재벌들과 제휴하여 박정권의 정치기반을 확립한 대신 민족사의 흐름속에서 반드시 치러야할 정신사적 청산작업은 우물쭈물 덮어두고 넘어가 버렸다는 점이다. 왜그랬을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역사의 한 매듭을 지어주는 민족적과업은 그것이 물리적인 힘에만 의존하는 일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영속적·정신적헉명을 수반해야만 할 일이기때문에 그일을 담당하려는 정치세력이나 정부 혹은 역사의 혁명적주도세력은 자기들의 정치생명과 개인적운명까지를 걸고 나서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청산작업은 특정정권의 사활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이 영구하게 자존하고 건강하게 번영하는가와 국가민족의 사활이 걸린문제이기 때문에 정권야욕을 애국적사명보다 앞세우는자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이점에서 이싯점에 국민의 의식개혁운동을 선창하고 나서는 전대통령이 역사창조의 주도세력으로 자처하는 이들과 더불어 단임정신을 주장하고 나선것은 당연한논리로 이해된다.
특히 정권의 책임적주체로서 국민의식의 개혁을 제창하고 나선다는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선 전대통령이 말했듯이 의식개혁이란 자기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철저히 시작해야하는 정신운동이기때문에 정권주체가 국민앞에 자기결단을 표명하고 나선것으로 보기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폐습·악덕·악풍등 폐기하고 청소하며 개선·개혁을 요하는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지도계층에 속해있고 그중에서도 권력주체 자체에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그것은 교육자도 마찬가지요, 종교가도 그렇다. 성직자가 사회를 향해 외치고 신도들에게 절교하는것 만큼 자기를 바로 지키고,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자기가 먼저 실행하면 한국국민의 의식개혁은 만점이상 성취될수 있다고 장담할수 있다.
물론 국민각자에게 있어서도 새시대에 알맞은 마음가짐과 생활습성을 익히는 일과 과거의 잘못된 의식을 고치는 일에 책임을 벗을수는 없다. 그러므로 80년대 벽두부터 시작된 사회정화운동은 부정적요소의 물리적척결이란 소극적 방법에서부터 이제는 국민의식개혁이란 적극적인 국민운동으로 심화되고 진행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자기주체의 의연한 확립과 더불어 세계사의 선두에서 내일의 세계를 이끌어갈 역사적사명을 지고있는 한국과 우리민족이 한번은 마음을 씻고 새 의상(생활습성)을 갈아입어야 되겠다는 당연한 의지와 결단에 국외자나 방관자가 있을수없다. 설령 누가 무슨의도로 했든간에 이 일만은 1백%가 민족적이익으로 귀결되는 운동이기에 내나라 내민족의 오늘과 내일의 영광,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 이 운동에만은 전국민이 함께 호응하고 일어서서 자기갱신의 과감한 탈바꿈을 해야한다.
굼뱅이도 때가되면 아름다운 나비와 잠자리로 변신하여 푸른 창공을 날면서 찬란한 꿈을 펴지않는가. 지지리 못살아 항상 남에게 업심만 받아오던 우리민족도 이제 스스로 하면 할수있는 자기운명의 재창조의 기회를 놓치지말고 내일의 자존과 번영을 위해 오늘 자기정비와 청산에 주저하거나 인색함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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