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불신임은 슈뢰더 총리와 집권 사민당(SPD)이 원했던 결과다. 슈뢰더 총리는 최근 고통분담을 내건 정부의 대대적인 개혁정책이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자 조기총선으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독일 최대주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등 지방의회 선거에서 잇따라 패한 것이 집권당이 '신임투표' 카드를 들고나온 계기가 됐다.
독일 유권자들의 다수당 견제심리를 이용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이번 회기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미뤄봤자 승산이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이 야당인 기민.기사연합(CDU/CSU)에 17% 이상 지지율이 뒤처지고 있다.
이날 슈뢰더 총리는 호르스트 쾰러 연방대통령에게 의회의 해산을 공식 요청했다. 따라서 이날부터 21일 이내에 대통령은 의회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총선은 의회해산 후 60일 이내 치르게 돼 있어 9월 18일 실시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이 같은 총선일정에 변수가 남아 있다. 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헌법 소원을 내겠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가 1년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명분은 법 절차상의 문제를 들고 있다. 독일 헌법 68조는 의회가 임기 중 자진 해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아닌 한 의도적이고 정략적인 의회해산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 같은 주장에 일부 헌법학자도 동조하고 있다. 의회해산권을 가진 쾰러 대통령도 이 점이 부담스러워 거부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낮다. 최근 여론결과 독일 유권자들의 약 71%가 총선이 올해 실시되는 것을 원하는 등 여론이 불신임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