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뻔할 뻔자 확 뒤집기 '괴짜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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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괴짜 경제학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03쪽, 1만2000원

경제학 책을 재미로 읽는 사람이 있을까. 복잡한 수식과 난해한 이론에 집착하는 경제학 선호의 특이체질을 가졌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학을 특별히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반인들은 수요.공급 함수나 한계효용 소리만 나와도 고개를 가로젓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집을 대신 팔아주기로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과연 얼마나 열심히 집값을 올릴지, 자녀를 도서관에 얼마나 자주 데리고 가면 공부를 잘 할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선남선녀들의 신상소개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경제학 책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주제라면 재미삼아 한 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천재 경제학자와 글발 좋은 한 전문기고가가 함께 쓴 이 책은 그런 잡다한 주변 현상을 꼼꼼히 파고 든 책이다. 원제인 'FREAKONOMICS'는 '괴짜(freak)'와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다. 근엄한 경제학 교수가 다루기에는 하찮고도 유별난 주제를 택했다는 점에서 괴짜이고, 그 주제를 경제학의 치밀한 분석도구를 이용해 끝까지 규명해 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제학이다.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스티븐 더브너는 이런 기발한 궁금증으로 충만한 괴짜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시카고대 교수)을 인터뷰한 후 함께 책을 쓰기로 했다. 각 장에 들어있는 더브너의 인터뷰 기사는 괴짜 경제학자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레빗의 호기심은 언뜻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튀는 것 같지만 실은 일정한 유형을 갖고 있다. 상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의 행동양식 가운데 불합리해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는 찬찬히 뜯어보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주로 범죄와 부정이 일어나는 동기와 과정을 밝혀내는데 집중된다. 그는 충분한 데이터와 치밀한 분석능력만 있으면 도저히 밝혀낼 수 없을 것 같은 은밀한 시험 부정이나 승부조작도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시카고 교육구내에서 벌어진 시험 부정과 일본 스모선수들의 암묵적인 승부조작을 공개된 통계자료만을 가지고 밝혀냈다. 거기에는 부정과 조작을 저지를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고도의 수법이 동원됐다. 이런 점에서 레빗은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숨겨진 단서를 바탕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범죄수사관이나 인디애나 존스 같은 탐험가에 가깝다. 통계분석과 치밀한 추리를 무기로 복잡한 데이터의 미로를 헤치고 진실을 밝혀낸다.

그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보통 선거에서 돈을 많이 쓰는 후보가 승리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의 연구에 따르면 돈을 많이 쓰는 것이 당선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거꾸로 당선될 가능성이 많은 후보에게 돈이 몰리는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실제로 미국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 후보들은 돈을 많이 끌어모으기는 했지만 그만큼 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상관성과 인과관계를 혼돈한 데서 오는 오류다. 예컨대 통계적으로 경찰관의 수가 많은 곳에서 범죄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고 할 때, 이를 경찰관이 많기 때문에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경찰의 수를 줄인다고 범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경찰을 늘리면 범죄가 줄어드는가. 레빗은 미국 주요 도시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경찰 인원의 증가가 범죄 발생을 줄이는 효과는 극히 제한적임을 밝혀냈다.

레빗은 미국에서 1990년대 이후 범죄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실은 1970년대 낙태허용이 확대되면서 범죄인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결론은 물론 상식에 반하거니와 심정적으로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도덕적.윤리적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레빗의 괴짜경제학은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이나 심리학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일단 상식을 뒤엎는 결론이 통쾌하고, 인간행동의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이 흥미진진한 것을.

김종수 논설위원

◆ 더 읽을거리

국내 저술로도 '알기 쉬운 경제학''살아있는 경제이론'을 지향하는 책들이 있다.

최근 선보인 '경제학의 유혹'(이상률 지음, 네모북스, 1만원)도 그 중의 하나. 고려대 대학원에서 계량경제를 전공하는 지은이가 인터넷 '싸이월드'에 연재 중인 글을 모은 것인데 20대답게 소재가 감각적이다. '소개팅에는 폭탄밖에 안 나오는 이유' '미션 임파서블-성매매특별법' '난 무조건 한 놈만 패-현시선호의 약공리' 등 소제목만 봐도 매혹적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함을 설명하기 위해 '안동 간고등어'를 예로 든다. 예전에 영덕의 고등어를 내륙지방인 안동까지 가져가 팔기 위해 소금 간을 강하게 했다. 그것이 양반 집안의 접대용이나 제수용으로 기본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지역 특산물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경제학 체계를 따라 최신 이론까지 섭렵한 내용은, 경제학 문외한이라면 읽기 만만치 않다. 수식과 그래프를 피했는데도 그렇다.

5년 만에 개정판이 나온 '열보다 더 큰 아홉'(정갑영 지음, 영진미디어, 1만2000원)은 검증된 경제교육서다. 연세대 교수가 썼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2000년 출간되어 TV 책 프로그램의 '테마서적'으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오페라, 시, 소설, 영화 등과 첫사랑, 백화점 세일 등 친숙한 일상을 소재로 한계효용, 부메랑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등 경제 개념을 전달하는 방식 덕이다. 개정판은 TV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 등 사회 흐름을 반영한 소재를 채택하고 분량도 늘려 더욱 충실해졌다.

'괴짜 경제학'이 사회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데 비중을 둔데 비해 두 책은 경제 개념을 설명하는데 무게를 두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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