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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대내각(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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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각의 불행한 충돌은 윤치영 내무와 전진한 사회부장관사이에서 일어났다. 사건은 수도청(현 서울시경) 경찰대가 전사회부장관 자택을 급습, 이곳에 피신해있던 유진산씨를 체포한데서 일어났다. 전 장관은 이 사건을 경무대와 국무회의, 그리고 국회로 끌고 가 윤 내무와 대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이 두 가지 중요 정치문제와 미묘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그 파문은 컸다. 정치문제란, 하나는 청년단체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던 반민족행위처벌법(약칭 반민법)이다.
청년단체 통합은 여순사건후국회의 건의도 있었지만 대통령특명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래서 통합운동은 정부가 후원을 했고 청년운동 경력을 가진 사회부장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장관은 대한민주청년동맹의 유진산씨와 가까워 자연 통합을 불씨가 추도하도록 후원했다. 장택상 외무도 역시 유씨 지지파였다.

<신성모씨 후원>
반면 윤 내무는 유진산씨를 싫어했다. 내각구성 후 유씨가 장 외무 편을 들어 <이 총리와 윤 내무의 장난으로 내무와 의무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 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이대통령은 통합청년단의 단장은 그때 막 귀국탄 신성모가 책임일 것이라고 했다. 자연 윤 내무는 신성모 후원자가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 반민법을 싸고 정부와 국회는 입장이 달랐다. 국회는 역사의 청산이라는 안목에서 친일파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입법방향으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범위를 축소하도록 바랐다. 정부로선 현실적으로 유능한 행정관료가 필요 있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하에서 관리를 지낸 사람들이었다. 특히 치안을 맡고있는 경찰이 문제였다.
군정하에서 공산당의 파괴활동을 막는데는 경험 있는 경찰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제하 경찰을 등용했고 이들은 새 정부에 그대로 흡수해 경찰요직을 맡고 있었다. 자연 내무부는 국회의 가혹한 반민법 제정에 대한 반대자였다.
그런데 이 반민법을 싸고 청년단체들도 두 갈래였다. 서북청년단 등 일부는 반민법에 있어 경찰을 대변했고 유씨등 일부청년단체는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마침 청년단체가 주관한 반공대회가 열렸었는데 이 반공대회는 국회의 반민법 제정반대를 결의했다.
반민법은 민족분열을 일으켜 반공태세를 약화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이 반공대회에 유씨등의 및 단체가 불참한 것은 물론이다.
바로 이런 때 유진산씨가 구속됐고 체포장소가 전장관 자택이었으니 시끄러운 정치문제가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먼저 윤치영씨의 회고로 당시의 윤 내무의 입장을 옮겨보자. 『유씨를 구속하게된 것은 미군정 때부터 청년운동을 한다고 일제시대 때의 부호들을 친일파라 하여 그들 집을 마구 점령하는 등 4백여가지 죄목의 고소장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군정당시에는 독립운동을 한다해서 경찰에서도 진상을 잡지 못했으나 정부수립 뒤에는 새 정부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 범법자를 치안책임자로서 잡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두막 등과 함께 대한청년민주동맹을 하는 그를 당시로서는 마음대로 잡을 수가 없어 기회를 보다가 서울운동장의 무슨 기념식에 참석한 것을 덮치자 진산이 효자동에 있던 전 장관집으로 도망해 경찰이 추격하여 집을 둘러싸고 진산을 나오라 하여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전장관이 국회에서 문제 삼았다』고 했다.
정반대 되는 전장관의 경위설명을 12월22일의 국회 논쟁을 통해 살펴보자.
이석주 의원(완주출신)-유진산씨를 체포하기 위해 대통령관저에 수사진을 배치한 사건, 그러고 경찰의 전 장관 자택 난입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대통령 특명을 갖고 간 전 장관에 대해 수도경찰청장이 모욕적인 협박까지 했다는 것은 울분을 금할 수 없다. 사건 경위를 밝히라.
전사회-나는 지난 20일 사회부장관 사표를 냈으므로 국회의원 자격으로 말하겠다. 최근 청년운동지도자 등을 경찰이 체포하는 일이 많아 우려된다는 대통령의 말이 있어 나는 청년단체 통합을 건의한 일이 있다. 이 결과 청년단체를 통합하게돼 대통령은 이 문제를 내게 일임했다. 이리하여 통합의 주동역할을 담당한 이가 유진산씨다.
지난18일 「대한청년단」 결성식에서 사회를 맡았던 유씨는 대통령과 상의할 일이 있어 경무대에 들렀는데 돌연 형사대가 경무대 뜰에 매복해 있다가 대통령면담을 끝내고 나가려는 우리 자동차를 둘러쌌다. 나는 대통령에게 달려가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청년운동에 헌신하는 유군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래서 경무대를 나온 뒤 나는 수도경찰청장에게 대통령지시를 전했고 청장도 이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갑자기 무장경관 30여명이 내 집을 포위하고 안방까지 난입해 유씨를 체포해갔다. 어제 내 집에 와있던 나의 형은 테러단의 습격인줄 알고 이웃집으로 피신해 응원을 청할 정도니 경찰의 행동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법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나는 곧 수도청에 갔었는데 청장은 내게 범인은닉죄에 해당된다는 위협까지 했다.
하도 기가 막혀 대통령에게 달려가 사표를 제출하고 울분에 못 이겨 그 자리서 울고 말았다. 대통령은 관계 경찰간부를 파면하고 윤 장관이 전 장관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장관을 파면시키겠다는 선언이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윤 장관은 내가 유진산의 죄를 비호하려한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관계경찰간부를 파면키로 했으니 사표를 철회하라고 했으나 앞날을 위해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대통령 명령을…>
윤 장관-한쪽 말만 듣고 너무 흥분하면 오해하는 수가 많은 것인데 지금 전 장관이 한말은 처음 듣는 말이 많다. 인권옹호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더우기 유진산씨에 대해서는 고소장이 있고 체포영장이 있어 체포하려 했으나 청년단체 통합문제가 있어 보류했다가 끝나자 체포할 것이다.
그리고 죄가 있는 자를 체포하려는데 애국자니 청년운동가니 해서 간섭이 많고 말썽이 된다면. 이 사회의 치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조혜영의원-첫째 문제는 유진산의 소위 범죄라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 좌익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청년단체 모두가 범한 사실이다. 둘째 반민법을 규탄한 반공대회를 반대한 구국청년단의 서상천, 학련의 이철승, 그리고 대한청년단의 유진산 체포, 이 모두가 정치적 흑막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째 대통령명령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중대문제다. 만약 총을 가진 장관이 총을 안 가진 대통령에게 복종울 안하고 국회결의를 무시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윤장관-경찰이 대통령관저에 매복했다는 일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체포영장이 있어 체포한 것이고 체포영장이 있으면 가택수색도 할 수 있다.
김상돈의원-4백만∼5백만원의 강·절도사건 고발은 들은 체도 안하더니 한 개인의 고소사건에는 장관이 선두에 나서니 이해할 수 없다. 또 얼마 전에 윤장관 부인은 내 집을 찾아와 국회의 악질의원은 체포해야한다는 말을 한일이 있는바 일개 부녀자가 국회의원집을 찾아다니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인권보호인가. 결국 국회는 윤내무 자퇴안을 재석 1백31 중 찬성72, 반대6으로 통과시켰다.

<국회서 불신임>
그런 얼마 뒤 이대통령은 윤·전 두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두 각료 경질을 발표하면서 이것은 국회의 자퇴권고와는 관계가 없는 예정된 내각변동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사표수리에 대한 배경설명.
▲윤치영씨-『내가 내무장관을 그만둔 것은 언젠가 이철승이 임신중인 다방종업원을 때려 낙태케 해 중부경찰서에 구속되자 이씨 숙부인 이석주 의원과 이원홍 의원(합천)이 찾아와 풀어달라고 했다.
내가 범법자는 풀어줄 수 없다고 하자 <독립유공자를 그러기냐>며 <내무장관 얼마나 해먹나 보자>더니 유진산사건이 나자 법에도 없는 불신임안을 냈다.』
▲윤석오 비서-『전 장관은 경찰권이양 때도 조병옥 편을 들고 여순사건도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등 윤 내무와는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다.
유진산 사건이 나자 전장관은 경무대에 들어와 <진산은 반공의 공로자인데 체포하다니…더우기 장관인 제집을 경찰이 난장판을 만들고…>라며 울었다. 바로 뒤 윤내무는 내게 <왜 전 장관을 대통령과 만나게 했느냐>고 야단이었다.
대통령은 울면서 호소하는 전장관을 달래서 내보냈지만 평소에도 막걸리 냄새를 풍기고 행동이 이단적이라 해 못마땅해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내보낸 것이다]
▲박용만 비서-『윤·전 두 장관 사이에 서로 미워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청년단 통합 때 준비위원장은 유진산씨여서 단장도 유씨가 되는 줄 알았는데 도중에 이대통령이 신성모를 하라해 바뀌었고 윤 내무는 이 기회를 이용해 진산을 거세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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