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가벼움'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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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개 없이 손으로 쉽게 뚜껑을 열 수 있는 ?간편 주류?. 대부분 용량(200~300mL)이 한 잔 정도이고 도수가 낮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온다. 따개도, 잔도 필요없다. 한 병을 다 마시지 않아도 된다. 캔 와인, 팩 와인, 미니 보드카 등 간편 주류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자신만의 칵테일을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도 늘었다. ‘소맥’만 말아 마시던 주당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요즘 대형 마트 주류 코너에 가면 독특한 용기의 와인들이 눈에 띈다. 콜라처럼 따먹는 캔 와인, 빨대를 꽂아 마실 수 있는 팩 와인, 화장품처럼 시험관 모양의 병에 담긴 와인같이 따개나 잔 없이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이다. 이런 와인들은 대개 한 잔 분량으로 사이즈가 작아진 것이 특징이다.

작고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으니 판매 급증

작아진 것은 와인뿐이 아니다. 소주·위스키에 이어 보드카도 용량이 작은 미니 제품이 나왔다. 포켓 사이즈의 보드카 ‘스미노프’는 얼마 전 200mL로 출시됐다. 용량과 가격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국내 최초 스파클링 약주’라는 별명을 얻는 산사춘S는 도수를 7%로 낮추고 별자리를 연상하는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한 용기로 젊은층을 공략하고 있다.

전통주 역시 가벼운 옷 갈아입기에 동참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유명한 ‘문배주’(중요무형문화재 86-1호)는 지난해 무거운 도자기 대신 가벼운 유리병으로 용기를 바꾸고, 상품 라벨도 한자가 아닌 영문을 선택했다. 술 양도 200mL로 줄였다. 문배주양조원 이승용 실장은 “전통주는 도수가 높아 한 병을 다 마시기가 힘들다. 한 잔씩 맛볼 수 있게 용량을 줄이고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얇은 용기로 바꾸고 난 후 매출이 2~3배 늘었다. 종전엔 40~50대가 주요 고객층이었으나 요즘은 30대 이하의 고객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작은 용량의 주류가 많이 나오는 것은 우선 소비 트렌드가 ‘솔로이코노미’로 불리는 1인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3년 전부터 혼자 살고 있다”는 직장인 김정수(34)씨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술 한잔 마시는 것을 즐긴다. 혼자서 종류별로 한 잔씩 음미하기 때문에 작은 용량의 주류를 구매하곤 한다”고 전했다. 나들이, 캠핑 등 야외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인스터애프앤비 영업마케팅팀 심동영 차장은 “컵 와인, 캔 와인은 ‘아웃도어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적당히 마시며 즐기는 음주문화 확산

주점의 변화도 눈에 띈다. 대형 호프집보다 스몰비어 전문점이 인기다. 봉구비어·용구비어·춘자비어에서 맥주 한 잔과 간단한 안주로 구성된 세트 메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서울 강서구에서 스몰비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강철(36)씨는 “자신의 주량에 맞춰 가볍게 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며 “하나의 소주나 맥주로 통일해 다같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취향에 따라 주류를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 사람도 많아졌다. 칵테일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대학원생 김연준(28)씨는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나만의 칵테일을 만들어 마신다”며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는 데다 적당한 선에서 술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소용량 주류의 판매량이 늘고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먹는 이가 늘어난 것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음주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클락 16’의 유영진 소몰리에는 “취향을 반영해 주류와 안주를 선택한다면 술자리가 가볍고 즐거워질 것”이라며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 리스트나 칵테일 메뉴를 확보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글=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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